[책의 향기]강력하고 마초적? 남자다움은 그런 게 아니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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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불편해/그레이슨 페리 지음/정지인 옮김/240쪽·1만4000원·원더박스

여성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으로 꾸미는 ‘크로스 드레서’로 유명한 저자 그레이슨 페리. 그는 이 책에서 “단순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남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가 남성들에게 덧씌워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 화면 캡처
여성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으로 꾸미는 ‘크로스 드레서’로 유명한 저자 그레이슨 페리. 그는 이 책에서 “단순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남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가 남성들에게 덧씌워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 화면 캡처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한 아이가 있다. 숨 가쁘게 바퀴를 돌렸지만 결국 뒤뚱거리다 울음을 터뜨리며 멈춰 선다. “아빠, 아빠!”라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아빠는 팔짱을 낀 채 언덕 위에서 이 같은 말을 내뱉는다. “징징거리지 마. 남자답게 굴어!” 자전거 마니아인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며 분노와 함께 궁금증이 생겨났다. 도대체 남자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강력함, 확실성, 극기, 단순함 등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남성성에 대해 반기를 든다. 저자는 도자기와 태피스트리(직물)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예술가다. 2003년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 수상을 비롯해 2013년에는 현대미술로 영국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특히 여성 드레스를 즐겨 입는 ‘크로스 드레서’로 유명하다. 두 딸을 둔 아버지이면서도 여성 옷을 입을 땐 ‘클레어’라는 자아로 변신해 외부자의 시선으로 남성성을 관찰하고, 남성이라는 내부자의 관점으로 고발한다.

책은 남성성이 생물학적인 성별 차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물임을 강조한다. 흔히 여성들은 분홍색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푸른색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18년 6월 미국의 여성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칙은 남자아이들에게는 분홍색, 여자아이들에게는 파란색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홍색이 더 단호하고 강력한 색깔이고, 더 섬세하고 앙증맞은 파란색은 여자아이들에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분홍색은 남성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단지 옷뿐이 아니다. 남성에게 잘 어울린다는 성격과 성향 역시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가 규정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감정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 “여자들처럼 감정에 휘둘려선 안돼” “스트레스는 혼자서 풀어야 해” 등처럼 말이다.

문제는 주입된 남성성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이다. 영국의 재소자 가운데 95%는 남자다. 폭력 범죄든 아니든 모든 범죄의 75%를 남자가 저지르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수치들도 외로움 속에 침울하게 살아가는 남자들의 수에 비하면 빙산의 한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결국 저자는 새로운 남성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관용과 융통성, 다원성, 감정이해력 등을 핵심 요소로 꼽는다. “이두박근을 키우는 대신 직관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저자의 제언은 전 세계 모든 남성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싸우거나 남을 구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도록 파견되는,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성별에 머무를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남자는 불편해#그레이슨 페리#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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