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책벌레들, 제발 돌아와주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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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찾아 삼만리’ 팔걷은 정은숙-강성민-김홍민 대표

“오소서, 독자들이여!” 독자가 있어야 저자도 출판도 문화도 살아난다. 사라진 독자들을 찾아 ‘책의 해’ 여정의 첫발을 뗀 ‘3인방’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왼쪽부터)가 간절함을 담아 포즈를 취했다.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오소서, 독자들이여!” 독자가 있어야 저자도 출판도 문화도 살아난다. 사라진 독자들을 찾아 ‘책의 해’ 여정의 첫발을 뗀 ‘3인방’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왼쪽부터)가 간절함을 담아 포즈를 취했다. 책의 해 조직위원회 제공
“회사는 망하고 있어요. 이 말 뒤에 괄호하고 ‘한숨’이라고 꼭 써주시겠어요?”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앞에서 만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의 말에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와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적어도 지금 그들에게 회사 일보다 더 시급한 현안이 있다는 사실을.

원래도 이들은 출판계에서 ‘재밌는 일’ 벌이기 좋아하는 인사들로 불린다. 유럽 서점 탐방단을 꾸리거나 표지 없는 책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함께 했다. 요즘은 더 수시로 뭉친다. 1993년 이후 정부가 25년 만에 선포한 ‘2018 책의 해’를 이끌 민관합동 집행위원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위원장을, 강 대표와 김 대표는 각각 ‘함께 읽기’ 분과장과 언론 분과장을 맡았다. ‘사장님들’이 발 벗고 나선 이유는 하나다. ‘사라진 독자’를 되찾기 위해서다.

○ “독자, 독자, 오직 독자뿐”

올해 ‘책의 해’ 지정 배경을 보면 사실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독서인구 급감에 따른 위기감이 작용했다. 출판인들이 체감하는 사태의 심각성은 더 크다. 김 대표는 “매일 판매를 확인하는데 매일 더 나빠진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저자는 늘었는데 정작 독자가 사라졌다. 각개전투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 힘을 합쳐야 할 때라는 게 출판계의 시각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왜, 어디로 떠난 것일까. 일단 너무 치열하게 바쁘다. 김 대표는 “하다하다 할 게 없어야 책을 읽는데 한국인은 그 단계까지 오질 못한다”고 말했다. 지루한 ‘권장도서 목록’도 독서에서 정을 떼는 요인으로 꼽았다. 무협지 덕분에 독서에 눈을 떴단 김 대표는 “책이 재미있다는 ‘계기’를 못 만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왠지 모를 ‘책의 무게감’도 독자를 떠나게 했다. 강 대표는 “‘책은 다르다’는 통념 때문에 독서가 일상과 구별됐다”고 말했다. 생활의 일부여야 할 책이 의무로 여겨진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 책 읽는 사람은 ‘별종’이 되는 시대다.

“친구끼리 ‘그 책 봤어?’라며 책이 수다 떨 대상이 돼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랬다가는 ‘얘 뭐야’ 하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죠.”(정 대표)

○ “홍익대 심야책방 VIP 오시길 고대”

사라진 독자를 찾겠다는 이들의 전략은 그래서 간명하다. 책 읽기 좋은 ‘참신한 계기’를 다양하게 준비하려고 한다. 22일부터 이틀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첫 축제에선 소파나 해먹을 비치한다. 구경만 하지 말고 편안히 맘껏 읽어보란 뜻에서다. 정 대표는 “책은 굳이 완독하지 않더라도 허전할 때 잠깐의 생각거리가 돼 주는 존재”라며 “‘누구나 책, 어디나 책’이란 걸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달 서울 홍익대 앞 ‘심야책방’도 기대하는 행사다. “심야책방에 ‘아주 중요한 분’을 모시려고 애쓰고 있다”는 야심을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항상 ‘망해도 그만’이 모토였단 김 대표. 하지만 “이번엔 망하면 안 돼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실 ‘야밤에 누가 서점에 가?’ ‘유통구조는 놔두고 행사만 하면 해결돼?’ 식으로 따지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열린 마음과 응원이죠.”

이들도 안다. ‘책의 해’ 행사가 모든 걸 해결할 ‘절대반지’는 될 수 없다. 그 대신 “지금껏 독자들이 잃어버리고 지낸 ‘책 읽는 계기’를 만들고 참신한 ‘제안’을 하며 방향을 모색하는” 게 목표다. 반지 대신 독자를 찾으려는 원정대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국출판인회#책의 해#독자#홍대 심야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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