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취업 되는게 없어도 당당… 청춘들의 ‘영화 힐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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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리틀 포레스트’ ‘소공녀’… 청년들 자화상 다룬 영화 줄이어
좌절하지 않고 자기 만의 삶 찾아
흥행도 호조… 관객 48%가 20대


지방에 사는 20대 희정(이세영)은 인생 역전을 꿈꾼다. 대학 편입시험에 합격해 서울로 떠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아등바등 살지만 한 달 일해 통장에 찍히는 돈은 80만 원이 전부.

19일 개봉하는 영화 ‘수성못’은 ‘열심히 산 게 죄’인 알바생 희정이 한 실종 사건에 연루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블랙코미디. 최선을 다했지만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을 담아냈다. 희정 외에도 그다지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은 영목(김현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루저’ 희준(남태부) 등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최근 극장가엔 요즘 청년들의 자화상을 다룬 영화들이 속속 개봉해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스크린에 담긴 이들의 모습이 ‘N포 세대’나 ‘88만 원 세대’처럼 마냥 무기력한 젊음이 아니라는 것. 때론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항변하고, 오히려 경쟁에 파묻혀 사는 친구들을 딱한 시선으로 동정하기도 한다.

지난달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는 임용고시에 실패하고 연애와 취업까지 뜻대로 되는 게 없는 20대 혜원(김태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비록 어떤 사람들 눈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고향에서 오랜 친구들과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오히려 자신만의 삶을 찾아간다. “20, 30대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연애나 시험, 취업 걱정은 버리고 한 박자 쉬어갈 여유로움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게 임 감독이 밝힌 연출 의도다.

실제로 20대 관객들도 이런 ‘당돌한 청춘 영화’에 적극 반응하고 있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리틀…’은 20대 관객 비중이 전체의 47.7%다. 요즘 개봉한 다른 영화보다 10%포인트가량 높다. 그 덕분에 영화는 지난달 ‘툼레이더’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단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순제작비 15억 원·80만 관객)을 넘겼고, 지금까지 15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또 배우 이솜 안재홍 주연의 ‘소공녀’(지난달 22일 개봉)도 순항하고 있다. 제작비 3억5000만 원을 투입한 저예산 영화로 집 구하기를 포기한 30대 청년이 주인공이다. 계란 한 판 사들고 친구네 집을 전전하지만 담배와 위스키를 즐기며 자기 취향대로 당당하게 산다. 전고운 감독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며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 뒤 정반대의 인물이 보고 싶어졌다”면서 “주인공 캐릭터가 보통 사람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사회에선 취업, 사랑 등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있다”며 “특히 소소한 일상을 다룬 저예산 영화의 경우 특유의 리얼리티 때문에 더 큰 호응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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