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이 상자 버리자 너도나도 휙휙… 벚꽃길에 쓰레기 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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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벚꽃축제 또 시민의식 실종… ‘깨진 유리창의 법칙’ 확인

벚꽃축제가 개막한 7일 오후 6시경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위쪽 인도의 노점상이 모아 놓은 종이박스에 시민이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왼쪽 사진). 너도나도 이 박스들에 갖은 쓰레기를 버리자 4시간 뒤인 오후 10시에는 쓰레기 더미로 변했다(오른쪽 사진).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벚꽃축제가 개막한 7일 오후 6시경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위쪽 인도의 노점상이 모아 놓은 종이박스에 시민이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왼쪽 사진). 너도나도 이 박스들에 갖은 쓰레기를 버리자 4시간 뒤인 오후 10시에는 쓰레기 더미로 변했다(오른쪽 사진).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가 7일 개막했다. 때늦은 꽃샘추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축제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축제장 곳곳은 어김없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벚꽃이 만개한 여의도고교에서 서강대교 남단까지 약 1.5km 구간을 걸을 때마다 쓰레기가 발에 차였다. 여의도 벚꽃축제는 올해로 14회. 매년 쓰레기 문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전 10시. 이때만 해도 현장은 깨끗했다. 약 5시간 전 환경미화원들이 말끔히 청소한 덕분이다. 벚꽃길 1.5km 울타리에는 노란색 자루 72개도 새로 걸렸다. 20m 간격으로 하나꼴이다. 영등포구가 설치한 임시 쓰레기통이다.

낮 12시경 지하철 여의나루역 2번 출구에서 원효대교 방면으로 약 100m 떨어진 현장. 이미 근처에 설치된 자루들은 쓰레기로 가득 찼다. 소시지와 핫도그 닭꼬치 번데기 등을 파는 노점상이 버린 식자재 상자와 비닐 등이었다. 자루가 가득 차자 한 노점상이 닭꼬치가 들었던 갈색 상자를 옆에 던졌다. 잠시 후 축제를 찾은 시민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무꼬치와 종이컵, 먹다 버린 떡볶이, 어묵국물 등 각양각색의 쓰레기를 빈 상자에 차례로 버렸다. 이어 노점상이 정체 모를 쓰레기가 담긴 커다란 검정 비닐봉투를 쓰레기 더미 위로 던졌다.

오후 3시경 폭 2m, 높이 1m 규모로 손수레 한 대 분량의 쓰레기가 쌓였다. 다른 곳에도 작은 ‘쓰레기 산’이 생겼다. ‘쓰레기 산’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질서의식은 추락했다. 머뭇거리던 시민들마저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투기 행렬에 가세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재활용품 분리’를 요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김모 씨(21·여)는 “상자에 쓰레기가 많아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둔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점상들이 버린 크고 작은 쓰레기가 ‘깨진 유리창’(사소한 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작동한 것이다.

오후 5시. 축제장은 이제 ‘사람 반 벚꽃 반’이 됐다. 쓰레기 쌓이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지하철 여의나루역 2번 출구 앞에는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 전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전단과 함께 바닥에 뒤엉켜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은 수시로 쓰레기를 실어 날랐다. 하지만 쓰레기 쌓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 미화원은 “아무리 치워도 한 시간도 못 가 다시 똑같이 쌓인다”고 말했다. 이날 구청은 두 차례나 불법 노점상 단속을 실시했다. 무용지물이었다. 노점상들은 단속반이 떠난 뒤 다시 돌아와 버젓이 영업을 했다.

오후 10시경 노점상 대부분이 하루 장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처리하는 상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솜사탕을 파는 한 상인은 쓰고 남은 설탕가루를 그대로 바닥에 쏟았다. 어묵을 팔던 상인은 남은 국물을 그대로 잔디밭에 쏟아버렸다. 그러면서 “사실은 대부분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다” “여기 놔두면 환경미화원이 알아서 치운다” 등의 말을 남겼다. 깨끗했던 벚꽃축제장은 정확히 12시간 후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8일 오전 5시경 미화원들의 청소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하지만 인파가 몰리면서 똑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그나마 오후 들어 쓰레기 투기는 줄었다. 비가 내린 탓에 노점 이용이 줄어든 덕분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매일 환경미화원 60여 명을 투입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노점상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쓰레기장이 된 벚꽃축제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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