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성적 인간’은 왜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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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진화/위고 메르시에/당 스페르베르 지음/최호영 옮김/560쪽·2만2000원/생각연구소

책 ‘이성의 진화’는 이성이 타인을 설득하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논증하는 능력으로 진화한 것이며, 개인 차원의 인지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 최적화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
책 ‘이성의 진화’는 이성이 타인을 설득하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논증하는 능력으로 진화한 것이며, 개인 차원의 인지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 최적화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
‘과학 수사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법의학자 알퐁스 베르티용은 1894년 수사 당국으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는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필적 감정을 의뢰받는다. 베르티용은 드레퓌스가 유죄라고 확신했다. 그의 감정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간첩과 드레퓌스가 쓴 문서는 필체가 다르다. 이는 드레퓌스가 의심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필체를 바꿨기 때문이다. 두 필체에 비슷한 점도 있는데, 이는 드레퓌스가 적발됐을 때 ‘누군가 내 글씨를 흉내 냈다’고 주장하려고 비슷하게 썼기 때문이다.”

책이 소개한 이 필적 감정은 전형적인 ‘확증편향’이다. 베르티용의 감정에 따르면 드레퓌스는 간첩과 필체가 비슷해서 유죄고, 달라서 유죄다. 이처럼 확증편향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 필적 감정은 드레퓌스가 종신형을 선고받는 데 영향을 줬다. 나중에야 드레퓌스의 무죄가 드러나지만 이 사건은 프랑스의 여론을 두 개로 찢어놓으며 공화정을 위기로 몰고 갔다.

프랑스의 인지과학자 두 명이 ‘확증편향은 왜 생기나’, ‘사실이 드러나도 사람들은 왜 생각을 바꾸지 않나’ 등에 관해 쓴 책이다.

‘이성은 개인이 올바른 신념을 갖고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성은 그걸 방해하는 확증편향도 가지고 있다.’ 이 두 명제는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면서 확증편향은 이성의 결함이 아니라 이성의 원래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은 진화 과정에서 논증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함께 자신의 성향에 맞는 ‘가짜 뉴스’를 근거로 상대를 비난하는 현상이 심각한 오늘날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의문도 생긴다. ‘제 논에 물대기’가 이성의 속성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을까?

헨리 패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나 보다. 패럴 교수가 저자 위고 메르시에와 인터뷰한 기사가 지난해 7월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다. 패럴이 물었다. “당신 말이 옳다면 추론(reasoning)은 무슨 쓸모가 있어?” 메르시에가 답했다. “우리는 객관적이고 엄격해. 내 생각하고 다르다 해도 상대방의 논증이 강력하면 내 생각을 바꾸잖아. 추론 덕에 그런 판단을 잘할 수 있지.”

저자의 주장이 약간 이랬다저랬다 하는 듯싶다. 책은 법률을 기반으로 배심원, 판사 등이 집단으로 추론하는 사법제도, 집단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의 제도 등이 확증편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집단 지성과 제도가 오류를 보완할 수 있다면 애당초 확증편향이 이성의 본질적 지위를 위협할 자격이 있을까? 된장독(이성)에 파리(확증편향)가 꼬인다고 안에 똥이 든 건 아니다. 모든 이가 가짜 뉴스에 걸려들지도 않고, “지구가 평평하다” 같은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거의 없다.

읽기에 썩 편치 않은 책이다. 기자처럼 이 분야 지식이 별로 없는 평범한 독자가 “본능과 전문 기술의 연속체 위에 있는 모든 메커니즘은 생물학에서 흔히 모듈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와 같은 문장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낯선 학술적 개념에도 역주가 없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성의 진화#위고 메르시에 당 스페르베르#최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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