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명장들의 고참 ‘재활용’ 비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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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프로야구 선수 정성훈(38·KIA)은 야구를 꽤 잘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성실하고 꾸준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9년 해태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지난해까지 현대와 LG 등을 돌며 통산 2135경기를 뛰었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는 선수였다. 경기에선 최선을 다했지만 개인 기록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기록이 생겼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그는 양준혁(은퇴)과 함께 KBO리그 최다 경기 출장 공동 1위에 올랐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필요한 건 단 1경기였다.

하지만 전 소속팀 LG는 그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젊은 선수를 키우겠다는 거였다. 적지 않은 몸값(2017년 연봉 7억 원)도 부담이 됐을 터였다. 이때 그의 마음가짐은 분명했다. ‘자신을 원하는 팀이 있다면 온몸을 바쳐 뛰겠다는 것’이었다.

손을 내민 사람은 KIA 김기태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달 24일 개막전에서 정성훈을 대타로 기용했다. 2136번째 경기로 역대 최다 경기 출장 신기록이었다. 김 감독은 “앞으로도 대기록을 쭉쭉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정성훈은 29일 삼성전에서는 결승 홈런을 치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고 있다.

NC 베테랑 타자 최준석(35)의 경우도 비슷하다. 롯데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왔지만 어느 팀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은 힘이 있다고 느꼈지만 원하는 팀이 없으니 유니폼을 벗어야 할 위기였다. 그를 데려온 것은 두산 시절 은사였던 NC 김경문 감독이었다. 그 고마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최준석 효과’가 대단하다. 최준석은 지난달 29일 한화전에서 8회 대타로 나와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때렸다. 31일 롯데전에서도 2안타 2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야구단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두 감독은 절실한 선수들을 데려와 판을 깔아줬다. 이들이 내뿜은 에너지는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고참이 죽기 살기로 하는데 어린 선수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선의의 내부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겨울 특별한 보강 없이도 양 팀은 시즌 초반 순항하고 있다. 특히 NC는 5일 현재 단독 1위다. 올해 정성훈의 연봉은 1억 원, 최준석은 550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두 감독은 구단에 큰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선수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들이 괜히 ‘명장’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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