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내 뿌리이자 낯선 땅… 계속 파고들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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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로 한국 이야기 쓰는 한국계 佛작가 뒤사팽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 한복판에 선 한국계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 혼혈인 그녀는 ‘모국어’(작가의 어머니가 한국인)를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다.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말해질 수 없는’ 한국은 그에겐 글쓰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 한복판에 선 한국계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 혼혈인 그녀는 ‘모국어’(작가의 어머니가 한국인)를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다.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말해질 수 없는’ 한국은 그에겐 글쓰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26)이 쓴 소설을 읽는 건 특이한 경험이다. 재작년 국내에서 출간된 데뷔작 ‘속초에서의 겨울’(북레시피)은 배경부터 등장인물까지 무척 한국적이어서 해외문학이라는 이질감을 느끼기 어렵다. ‘불어로 쓴 한국 이야기’를 번역판으로 읽는 이 기묘한 느낌은, 정체성 혼란 때문에 창작을 시작했다는 한국계 프랑스 작가의 복잡한 내면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이 작가와 한국 독자들은 이런 ‘낯선 방식’으로 조우한다.

지난달 31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한 프랑코포니 축제 참석차 방한한 뒤사팽 씨를 만났다. 데뷔작으로 로베르트 발저상, 프랑스 문필가협회신인상 등 유럽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한국에서도 대전, 부산 등에서 독자들과 만나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뒤사팽 씨는 이렇게 한국 독자들을 만난 것이 매우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는 프랑스, 스위스에서 자랐기에 한국어를 조금 알아듣긴 하지만 말하지는 못한다. 당연히 책을 쓸 땐 프랑스어권 독자들을 먼저 생각했다. 한국어로 번역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그는 “한국문화를 거리감 없이 잘 표현했다는 평에 기뻤다”며 “멀리서만 봤던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책”이라고 말했다.

“모든 대화를 말하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상상’하며 프랑스어로 썼어요. 한국인임에도 한국어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프랑스어로 말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죠. 아마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했다면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최근 탈고한 두 번째 작품에서도 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국계 스위스 여성을 다룬 것. 주인공의 조부모는 일본에서 파친코를 경영하는 재일교포다. 8월경 유럽에서 먼저 출간되고 한국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뒤사팽 씨는 “내 뿌리는 한국에 있지만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고, 내게도 한국은 먼 나라”라며 “모든 걸 동원해서 한국을 표현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그는 열세 살 이후로는 매년 짧게라도 한 해에 한 번은 한국에 온다. 올 때마다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한국은 역동적이다. 언제나 한결같은 유럽과 달리 변하지 않는 장소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웃어보였다.

염상섭 이청준 이승우 편혜영 등 한국 작가들의 프랑스어 번역 책도 즐겨 읽는다. 특히 염상섭을 통해 조부모 시대의 한국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동시대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는 “성형수술, 첨단 기술 등 프랑스어권에서는 나올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글쓰기의 출발은 자신의 정체성 고민에서 비롯됐지만, 흔들리는 뿌리와 무너지는 경계는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뒤사팽 씨는 “문화 교류가 늘고 지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아가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며 “글쓰기를 통해 개인적 차원의 고민을 넘어 문화적 복합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엘리자 수아 뒤사팽#속초에서의 겨울#불어로 쓴 한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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