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회장 채용비리 연루… 권력기관서도 청탁 정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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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하나은행 특별검사 결과


2013년 KEB하나은행 채용 비리에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연루된 정황이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함영주 하나은행장과 김종준 전 행장 등 다른 전·현직 경영진도 특혜 채용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이와 함께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 재직 당시 추천한 지원자가 부정 합격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 전 원장은 하나은행 채용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지난달 12일 사퇴하면서 “인사에 관여하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개인적인 추천이 채용 비리의 단초가 된 셈이다.

특히 이번 금감원 조사에서 국회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하나은행에 채용 청탁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 수사를 통해 청탁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 합격자 229명 중 32명에 드러난 비리 정황

금감원은 지난달 13일부터 15일 동안 하나은행의 2013년도 채용 과정을 특별검사한 결과 총 229명의 합격자 중 32명에게서 비리 정황을 적발해 검찰에 제공했다고 2일 밝혔다. 이 중 청탁에 따른 특혜 채용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김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김모 당시 지주사 인사전략팀장이 추천한 지원자다. 이 지원자는 당시 인사 관련 서류에 추천자가 ‘김○○(회)’, 추천 내용으로 ‘최종 합격’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합숙면접에서 불량한 태도로 0점을 받았지만 최종 합격했다. 김 팀장은 현재 하나은행 전무로 재직하고 있다.

금감원은 김 전무 이름 뒤에 적힌 ‘(회)’라는 표기가 통상 회장 혹은 회장실을 의미한다는 인사담당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금감원은 이에 대한 다른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성일 금감원 특별검사단장은 “김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라며 단정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른 지원자의 ‘추천 내용’ 항목에는 당시 충청사업본부 대표(부행장)였던 함 행장의 이름이 있었다. 해당지역 A시장 비서실장의 자녀로 알려진 이 지원자는 합숙면접 점수가 부족했지만 합격했다. 또 추천자가 ‘짱’으로 표시된 지원자 3명도 합격 기준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지만 합격했다. ‘짱’은 당시 행장이던 김 전 행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흥식 부사장 추천’으로 명시된 지원자도 서류전형 점수가 합격 기준에 미달했지만 최종 합격한 것으로 나타나 최 전 원장의 채용 비리 정황도 확인됐다.

○ 하나금융, 금감원 발표 즉각 부인

하나금융은 김 회장의 개입 여부를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김 회장 건은 지주사 인사전략팀장이었던 김 전무가 하나은행 인사담당자에게 추천할 때 해당 담당자가 회장 추천으로 오인하면서 남긴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전무가 이같이 해명했음에도 금감원이 김 회장이 연루된 것처럼 발표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 역시 검사 과정에서 “추천한 사실이 없다. 지원자도 모르고 지원자 부모도 전혀 모른다”고 해명했다. 함 행장은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니 A시청에 입점한 지점장 추천이었는데 부행장 추천으로 잘못 표기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김 전 행장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한 데다 최 전 원장이 사퇴까지 하자 금감원이 작심하고 검사를 벌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검사를 위해 최정예 검사 인력을 끌어모은 금감원은 올 1월 2014∼2016년 채용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 증거가 발견됐던 서버 백업 자료뿐만 아니라 창고에 쌓아놓은 업무용 PC까지 뒤졌다.

○ ‘비리의 뿌리’ 청탁자 처벌해야

이번 조사에서 ‘국회정무실’ ‘청와대 감사관 조카’ 등 정치권이나 정부기관 인사와 관련된 지원자가 부정 채용으로 합격한 정황이 드러났다. 추천 내용에 국회정무실이라고 표기된 지원자는 금융업계를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관련 인사가 청탁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이 지원자를 지주회사 공보 담당자가 추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청와대 감사관 조카의 경우 당시 개인영업담당 부행장이 추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비리 의혹을 받는 당사자는 조사 과정에서 이를 부인했다.

이번 검사 결과는 인사 청탁자가 국회와 청와대 등 권력기관 전반에 퍼져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금감원은 청탁자의 실체를 밝히진 못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사태가 청탁을 들어준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그친다면 ‘뿌리’를 그대로 둔 채 ‘가지’만 치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계 관계자는 “향후 검찰이 채용 청탁자에 대한 조사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채용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검사에서는 하나은행이 과거 특정 대학 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순위를 조작(14건)하거나 남성을 채용하려고 여성 합격자를 떨어뜨린 정황(2건)도 적발됐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하나은행#채용비리#김정태#특별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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