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을 자녀를 위해… ‘장례 희망’ 미리 써놓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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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3> 미혼 외동딸의 걱정


■ 부모님 떠나시면 어떡하죠

부모님과 함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35세 싱글녀입니다. 요즘 머릿속이 복잡해요. 얼마 전 상가(喪家)에서 본 친구의 모습이 잊히질 않네요. 상을 당한 친구는 저처럼 미혼인 외동딸이에요.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혼자 치르는 모습이 너무 가엽고 힘겨워 보이더군요. 마치 미래의 제 모습 같았죠.

친구는 막상 장례를 치러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감당할 게 너무 많았다고 해요. 조문객 식사 상에 편육을 올릴지 말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부터 빈소 꽃 장식을 1단으로 할지 3단으로 할지, 화장(火葬)을 할지 매장을 할지, 장지는 어디로 할지 등 모든 게 막막했다는 거예요. 가까운 친척도 몇 없어 운구할 사람은 물론이고 상주를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대요. 여자는 상주를 맡지 않는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요즘 외동딸들이 얼마나 많은데….

친구는 정신없이 삼일장을 치르느라 정작 아빠 얼굴은 몇 번 보지도 못했다며 울먹였어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면서요. 부고를 전했어야 할 사람들이 뒤늦게야 생각나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고 하네요. 저보고 미리 준비해 자기처럼 후회하지 말라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께 여쭈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 돌아가신 아버지 옷장속엔…

외동 자녀가 많고, 결혼하지 않는 성인이 보편화된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장례는 많은 가정의 걱정거리다. 노년을 향해 가는 수많은 부모의 마지막을 책임져야 할 막중한 임무가 한 자녀의 어깨 위에 오롯이 얹혀 있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준비가 뭐예요. 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미혼인 39세 외아들을 둔 주부 박인자 씨(67)는 장례 계획을 묻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강아지만 아파도 애가 타서 어쩔 줄 모르는 녀석인데 혼자서 우리 둘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라면서 “예전엔 형제도 많고 친척도 많아 도움을 받았지만 요샌 어디 그러냐. 교회라도 다녀야 하나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생사학(生死學) 전문가인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이젠 더 이상 장례를 자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혼자 남을 자녀를 배려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더 뜻깊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장례(葬禮) 희망’을 적는 것이다.

장례 희망서란 장례 과정의 세부 내용을 미리 자신이 결정해 놓는 일이다. 어디서 며칠 장으로 장례를 치를지, 부고는 어디까지 돌릴지, 빈소는 어떻게 꾸미고 영정사진은 무엇으로 할지, 매장을 할지 화장을 할지, 장지는 어디로 할지 등을 사전에 정해 놓으면 자녀의 짐을 크게 덜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서동환 소장은 “장례는 후회가 안 남게 치르는 것이 중요한데 제일 좋은 건 고인이 정리를 해주고 가는 것”이라며 “고인이 장례 계획을 세워 주면 상조서비스 같은 걸 들지 않아도 유족의 혼란이 훨씬 줄고 불필요한 호화 장례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영정사진 주변을 꾸밀 꽃 장식 하나를 고르더라도 단 수와 꽃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40만 원에서 200만 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다. 고인이 이를 미리 정해주면 자녀의 선택에 큰 도움을 준다.

박종헌 씨(81)는 자식이 넷이나 있지만 최근 직접 자신의 장례 희망을 적었다. 박 씨는 “둘은 외국에 살고 나머지 둘도 바빠 내가 직접 장례 계획을 짰다”며 “요새는 그렇게 하는 게 부모의 도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검소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박 씨의 장례 희망은 매우 구체적이다. ‘화장하면 유골함을 너희들 승용차에 싣고 장지까지 가라. 리무진 같은 데 태울 것 없다’는 식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미진(가명·53) 씨의 아버지도 그랬다. “5년 전 암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 옷장을 열어보라 하시더라고요. 문을 여니 영정사진은 물론이고 ‘수의로 하라’며 평소 아끼시던 양복에,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골라 옷걸이에 걸어 놓으셨어요. A4용지 한 장에 부고 때 연락해야 할 동창회장 전화번호부터 선산 묘지기 연락처까지 정리하셨더라고요.” 그는 “통장 정리는 물론이고 사망신고 때 필요한 주민번호까지 적어두셨다”며 “우린 그대로만 하면 됐다. 가족들이 아직도 그때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추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장례문화에서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한 장례지도사는 “12년간 장례 일을 하면서 장례 희망서를 가져오는 경우는 1%도 보지 못한 것 같다”며 “자녀들이 부모님 뜻을 모르다보니 꽃 장식 하나를 두고도 ‘싼 걸 하네, 비싼 걸 하네’ 언쟁을 하다가 급기야 유족끼리 싸움이 나기도 한다. 고령화로 고인이 급증할 텐데, 앞으로 더더욱 장례 희망을 써두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접 나서서 장례 희망서 작성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경우 관내에서만 1200여 명의 노인이 장례 희망서를 썼다.

▼“삼베수의 대신 평소 입던 옷 입고 이별을”▼

전문가들 “삼베옷은 일제 잔재… 의미있는 평상복 입는게 전통”

한국인이 언젠가 닥칠 장례를 대비해 가장 많이 준비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수의’다. 특히 높이 치는 건 국산 삼베 수의로, 종류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호가한다.

하지만 삼베 수의는 우리나라 전통이 아니다. 장례 전문가들은 ‘일제의 잔재’라고 입을 모은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평소 입던 옷 중 가장 뜻깊고 멋진 옷을 수의로 입었다. 여성들의 수의는 혼례복, 남성들은 관복인 식이다.

한국복식사를 연구해 온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은 “별도로 만든 수의가 등장한 건 조선 후기”라며 “그 시기 여성들의 저고리가 작아져 수의로 쓰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당시 수의는 비단 등 곱고 아름다운 색감의 소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장례법은 구태의연하고 개선할 여지가 많다’며 가장 저렴한 삼베옷을 고인에게 수의로 입히도록 했다. 한국 장례를 격하하려 한 일제의 정책이 마치 우리의 전통인 것처럼 왜곡된 것이다. 장례지도사 고세환 씨는 “수의 대신 평상복을 입는 게 우리 전통이기도 하고 화장률이 90%가 넘는 지금의 세태와도 맞는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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