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세영]비핵화 협상의 다섯 가지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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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혈맹 中 버리고 베트남化 땐 中 견제위해 남-북이 모두 미군 필요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
“두려움 때문에 협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협상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쿠바 위기 때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 합의가 이루어진 후 전개될 화려한 평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꿈’이 이루어지려면 앞으로 다섯 가지 험난한 함정을 무사히 건너야 한다.

우선 ‘중국의 함정’이다. 이번 대화의 물꼬가 트인 건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 진짜로 대북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다. 서울-평양-워싱턴의 대화 라인이 열리고 ‘차이나 패싱’이란 말이 나온다. 더욱이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 관세폭탄을 부과하며 선전포고를 한 후 전 세계에 반중(反中) 동맹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9·11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국과 같이 테러에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테러의 편에 설 것인가”라는 선언과 같다. 세계가 두 나라 중에 양자택일해야 할 판이다. 이 와중에 중국이 왕따당한다고 생각하면 대북 경제제재의 고삐를 슬며시 늦출 수도 있다. 그러면 북한은 숨통이 트이고 태도가 변할 것이다.

정부도 ‘과신의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벌써 노벨평화상 운운하고 있다. 한반도 운전석에 앉아 샴페인에 취하면 일 난다. 앞으로 산 넘어 산이다. 정의용 특사에게 “당신이 백악관 기자실에서 직접 발표하라”고 한 것을 트럼프의 배려로 보면 큰 오산이다. 만약 ‘잘못되면 판을 벌인 당신들이 책임지라’는 숨은 가시이다. 자꾸 청와대는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면, 경제 협력 재개”를 운운한다. 지금까지 북은 늘 문서상으로 비핵화 합의는 잘해 왔다. 그런데 그 다음 검증단계가 말썽이었다. 너무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성급히 경제제재를 완화해선 안 된다.

북의 지도자가 직면할 ‘평양의 함정’도 있다. 그간 배고픈 인민들에게 핵강국이 될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핵을 갑자기 포기하겠다고 말한단 말인가. 옛날처럼 물자가 펑펑 쏟아져 들어올 것 같지도 않은데. 만약 그들이 과거와 달리 진정성을 보인다면 핵 포기의 명분을 세워주는 윈윈의 묘책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 함정’도 돌발 변수이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화파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을 북한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보는 폼페이오와 볼턴으로 전격 교체했다. 평양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수로 보이는데, 중재자로 나선 문 대통령이 정말 처신하기 힘들게 됐다.

마지막으로 ‘죄수(prisoner) 게임의 함정’이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북한이 치킨게임을 했다. 서로가 으르렁거리지만, 대북 경제제재가 먹혀 극적 타결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불쑥 대화 카드를 내밀어 죄수의 게임으로 바꾸었다. 새로운 게임에서 모두에게 ‘최선’은 비핵화와 북-미 수교를 맞바꾸는 것이다. 반대로 평양에 ‘최악’은 핵을 포기했는데 상대국들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최악’은 북한이 챙길 건 다 챙기고 몰래 핵미사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죄수게임 형태의 역사적 협상 사례들을 보면 서로를 확고히 신뢰하지 못했을 때 최선보다는 최악을 선택했다. 남북이 그간 그렇게 불신했는데 과연 이번에 파격적인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다섯 가지 함정을 모두 넘지 못하면 모처럼의 비핵화 협상은 역사적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바로 ‘북한의 베트남화’ 가능성이다. 베트남이 혈맹 중국을 버리고 미국과 손잡은 이유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에 영토적 야심이 없다. 그런데 중국은 있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가 자기 역사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만은 남과 북의 학자들이 중국과 싸우고 있다. 이 역사전쟁에서 지면 유사시 인민해방군은 구토(舊土)를 찾으려 압록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여기에 서울과 평양이 공유해야 할 주한 미군의 새로운 가치가 있다. 집요한 영토적 야욕을 가진 중화패권을 견제하는 역할이다. 마오쩌둥이 미국과 극적으로 국교 수립을 한 것은 한때 혈맹이었던 소련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란 역사를 되새겨 볼 만하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
#비핵화#차이나 패싱#대북 경제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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