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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선희]꽃중년과 개저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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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선희]꽃중년과 개저씨 사이

박선희 문화부 기자 입력 2018-03-15 03:00수정 2018-03-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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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문화부 기자
“여기, 당신의 발을 호빗이 아닌 좀 더 사람 발처럼 보이게 할 몇 개의 실행 가능한 팁을 정리해봤다.”(‘여름철 발 관리법’ 중)

최근 출간된 ‘미스터 포터’(그책)라는 세 권짜리 책은 ‘가꾸는 남성’이 각광받는 요즘 추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해외 남성 전용 온라인 편집몰에 연재됐던 내용을 엮은 것으로 숄칼라 카디건 제대로 입는 법, 넥타이 딤플(매듭 아래 움푹 팬 주름) 만드는 법 같은 패션 팁만큼이나 장인어른과 잘 지내는 법, 프로처럼 칼질하는 법 같은 생활의 요령을 강조한다. 책의 부제는 ‘스타일과 품격 있는 삶을 위한 매뉴얼’. 그런 남성이 되는 데 이 모든 게 필요하단 뜻이다.

확실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특히 스타일과 품격을 동시에 갖추기란 쉽지 않다. 이미 세 권이나 되지만, 이 책이 그 매뉴얼을 ‘제대로’ 다루려면 내용은 훨씬 방대해져야 할 것이다. 완벽한 슈트를 고를 줄 아는 동시에 양고기 굽는 법도 알고 프로처럼 세차할 줄도 아는 남자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단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요컨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자기 스타일을 갈고닦을 시간이 많았던 중년 남성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실제 요즘 대중문화에서는 꽃중년이 인기다. 시청자들은 ‘중년’ 감우성과 지진희에게 열광한다. 드라마 속 그들의 중년 캐릭터가 확고한 자기 스타일과 품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급 슈트패션의 끝판왕인 지진희에겐 신사도가, 절제된 캐주얼로 편안함을 강조한 감우성에겐 인간미가 있다. 잔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조차 진중함과 여유를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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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중년이 꽃중년보다는 ‘개저씨’로 불린다. 스타일 문제는 부차적이다. 먹고살려다 보니 관리 못한 뱃살, 아재패션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진짜 개저씨’를 만드는 건 안하무인 격 자기중심주의, 지위를 앞세운 퇴행적 습성 같은 ‘품격의 결함’이기 때문이다. 지진희나 감우성처럼 그럴듯한 피코트(해군 선원용 코트를 본뜬 스타일)를 걸치고, 중저음에 고독한 미간을 흉내 낸다고 매력적인 꽃중년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어디서 베낀 듯한 어쭙잖은 스타일은 더 큰 냉소를 부른다.

“괘념치 말아라. 다 잊어라. 아름다운 스위스와 러시아의 멋진 풍경만 기억해라.”

최근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성폭행 가해자가 된 한 유력 대선 주자의 발언에 실소와 조롱이 잇따르고 있다. 그가 피해자에게 남긴 말이 보통 특이한 게 아니어서이다. 그 와중에 그는 도대체 어떤 ‘스타일’을 흉내 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실제로 ‘충남의 엑소’로 불리기도 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선 주자의 몰락은 스타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초래한 또 다른 부작용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꽃중년과 매일 뉴스를 채우는 개저씨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꽃중년#개저씨#스타일#미투#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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