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가족도 오른손도 없는 18세 보더 “선생님 계시기에…”
더보기

가족도 오른손도 없는 18세 보더 “선생님 계시기에…”

임보미 기자 입력 2018-03-13 03:00수정 2018-03-13 03:21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한국선수단 최연소 출전 박수혁
복지시설서 PC게임에만 빠져있다 16년 보살핀 이수경 복지사 운동 권유
균형 못맞춰 첫 완주에만 한달
꼴찌에서 두 번째로 마쳤지만…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 36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박수혁이 12일 강원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상지장애 경기에서 빠르게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다. 전체 출전 선수 22명 중 21위를 차지한 박수현은 “안 넘어지고 빠르게 내려온 것도 감사하죠. 2022년 베이징 패럴림픽이 있으니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정선=뉴스1
평창 겨울패럴림픽 한국 최연소 선수인 파라 스노보드(장애인 스노보드)의 박수혁(18·초월고)은 ‘이제껏 가장 힘이 되어준 한 사람’을 묻자 망설임 없이 “이수경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오른손이 없이 태어난 박수혁은 부모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다 18개월 때부터 자신의 장애 유형에 맞는 SRC보듬터(지체 뇌병변 주거시설)에 입소했다. 이수경 복지사(47)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18개월부터 18세가 된 지금까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 이 복지사는 바로 박수혁에게 처음 운동을 권한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 박수혁은 집에만 오면 화장실 가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PC 게임에 빠져 살았다. 대부분 그 나이 또래 아들을 둔 여느 어머니들의 고민이 그렇듯 보듬터 생활재활교사와 이 복지사도 아들과 다름없는 수혁이가 두문불출하고 게임만 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게임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분출할 방법을 고민하던 이 복지사는 박수혁에게 육상선수로 활동할 것을 권했다. 축구게임 속 존 테리(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가 뛰는 모습을 동경했던 박수혁도 멋지게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흔쾌히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육상 선수로 처음 나갔던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를 마치고 곧바로 스노보드에 도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상지장애를 가진 스노보드 선수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한 특수학교 교사가 박수혁을 추천했다.

“해보라고는 했는데 평소 겁이 많아서 놀이기구도 안 타던 수혁이가 중간중간 점프도 해야 하는 스노보드를 잘 탈지, 해외 전지훈련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간 봐온 수혁이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 보니 잘해 낼 거라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수혁이가 초등학교 때 외부 프로그램에 함께 나갔는데 그때 한 꼬마가 수혁이 오른팔을 빤히 쳐다보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더니 수혁이가 다가가서는 ‘오빠 팔이 이상하지? 신기하게 생겼지? 그런데 이거 오빠 팔이야. 오빠는 이걸로 다 한다’고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수혁이는 어딜 가도 잘 살겠구나’ 안심이 됐어요(웃음).”

고소공포증은 중간중간 점프가 필요한 보드 크로스 훈련에서 박수혁을 괴롭혔다. 헬멧이 깨질 만큼 세게 넘어져 기절도 했었다. ‘또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박수혁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무서움보다) 조금 더 앞섰어요. 또 기술을 하나씩 배우면서 이렇게 하면 내가 안 다치고 탈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스노보드는 양팔로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보드를 타는 데까지 약 한 달이 걸렸다. 상지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수혁이가 처음 육상을 시작할 때도 뛸 때 자꾸 머리를 심하게 흔들더라고요. 그래서 집중해서 흔들지 말아 보라고 했는데 조절이 잘 안 됐어요. 나중에 트레이너 선생님께 물어보니 그게 수혁이가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이더라고요. 우리는 양쪽 팔을 흔들어 균형을 잡지만 수혁이는 한쪽 팔로 균형이 쏠려 머리를 흔들었는데 제가 그걸 지적했던 거죠. 수혁이가 균형이 흐트러져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었어요.”

초등학교 시절 체육대회에 나선 박수혁(왼쪽 사진). 이수경 복지사(오른쪽 사진)는 이날 처음 스키장에서 박수혁의 경기를 지켜봤다. 광주시장애인체육회와 박수혁이 재학 중인 초월고등학교 교사들도 함께 응원에 나섰다. 이수경 복지사 제공·임보미 기자
초창기엔 넘어지지 않고 슬로프를 완주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지만 차츰 그 시간은 일주일, 2∼3일로 줄었다. 12일 스노보드 크로스 첫 경기를 21위(최고 기록 1분22초68)로 마친 박수혁은 “최연소로 참가하니 다른 선수들도 관심을 많이 줬어요.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요. 1차 시기 때는 너무 긴장을 했는데 한 번 타보고 나니 2차 때는 편하게 탈 수 있었어요. 안 넘어지고 빠르게 내려온 것도 감사하죠. 다음 베이징이 있으니…”라며 활짝 웃었다.

사교적인 그는 싱글벙글했지만 정작 이 복지사는 박수혁이 1차 시기 스타트라인에 서 있을 때부터 눈물을 흘렸다.

“너무 기특하고 대견스럽고…. 보드 타는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봤거든요. 정말 벅찼어요.”

이날 경기 후 정선 알파인경기장을 떠나기 전 이 복지사는 박수혁을 응원하러 온 이들과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입학식, 졸업식은 물론 체육대회까지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며 ‘엄마 달리기’에도 나섰던 이 복지사지만 바삐 살다 보니 박수혁과 나란히 서서 찍은 첫 사진이 됐다. 이 복지사는 “수혁이와 스키장에 온 게 처음이에요. 수혁이가 SRC보듬터 친구들에게 보드를 한번 가르쳐 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박수혁 역시 더 많은 친구들이 스포츠로 세상과 교류하기를 바란다.

“스포츠를 통해서 장애, 비장애 친구들이 함께 많이 어울렸으면 해요. 친구들이 패럴림픽을 보고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어요.”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박수혁#패럴림픽#스노보드#최연소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