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친척이 결혼하면 저도 10만원보다 더 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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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7일 인터뷰에서 “청탁금지법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많아 안타깝다”며 “대표적인 것이 모든 국민이 3·5·5 룰을 적용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공무원도 직무 관련성이 없는 친구의 경조사라면 액수에 제한 없이 부조를 할 수 있다”며 “반대로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3·5·5도 안되는데 마치 여기까지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7일 인터뷰에서 “청탁금지법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많아 안타깝다”며 “대표적인 것이 모든 국민이 3·5·5 룰을 적용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공무원도 직무 관련성이 없는 친구의 경조사라면 액수에 제한 없이 부조를 할 수 있다”며 “반대로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3·5·5도 안되는데 마치 여기까지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당초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시행령 개정 효과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2016년 9월 시행 이후 농수축산 농가의 경제적 피해가 크다는 민원이 거세지자, 정부와 국회는 ‘법 취지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농수축산물 선물비와 경조사비 상한액을 수정했다. 개정안은 올 1월 17일부터 시행됐고, 얼마 후 대목이라는 설 연휴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53·전 도지사) 사건이 터지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질문의 선후(先後)와 주부(主副)도 바뀌었다. 》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오피스텔 편의를 제공받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4억1000만 원 상당의 이 오피스텔은 그의 친구 S 씨가 운영하는 건설사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S 씨는 본보 통화에서 “서울에 출장 왔을 때 필요하면 이용하라고 출입카드를 줬다”고 밝혔다)

“법 위반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겠지요. 단지 아직은 오피스텔 사용에 대한 대가 지급 여부, 수수한 금품 등의 가액, 당사자 간의 직무관련 여부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 없어서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고발한 혐의는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이고, 아직까지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람은 없는데….

“고소 사실 외에 추가로 위반 사안이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의 인지 내지 신고·고발을 통해 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수사기관이 하지 않는다면 청탁금지법상 개인이나 시민단체 등 누구든지 법 위반 행위를 신고할 수도 있고요.”

―안 전 지사는 이미 사임했는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되나요.

“법 적용은 행위가 벌어졌을 때를 기준으로 하니까 이후 그만뒀어도 청탁금지법 적용에는 상관이 없겠지요.”

―공무원 비리가 발생했을 때 “왜 징계하지 않느냐”고 하면 자주 듣는 말이 “사직해서 기관이 징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안 전 지사도 사직서를 제출한 바로 다음 날 도의회가 수리했지요. 독일은 사직해도 기관이 징계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않는지요.

“퇴직제도가 징계 회피 수단으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 공무원이 퇴직을 희망할 경우 징계사유가 있는지 감사원 검찰 경찰에 확인해야 한다는 게 국가공무원법에 있습니다. 그래서 혐의가 확인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 연금같은 부분도 결국 나중에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퇴직으로 인한 징계 실효성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있다고 보이네요.”

―올 1월부터 5만 원이던 선물 상한액을 농수축산물에 한해 10만 원으로 완화했습니다.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청탁금지법을 완화해 준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특정인의 사면을 요청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절 때 우리 농수산물을 차례에 올리고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었으니까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농가와 정치권에서 나오긴 했죠. 사실 화훼농가는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법은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일부라 해도 심대한 타격을 받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부분은 정치적·정책적으로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화해준 경제적 효과는 나타났습니까.

“아직 두 달도 안 돼 분석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고…, 충분히 시간이 지나도 아마 이 법 개정으로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 엄격하게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수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 경제 상황, 자유무역협정(FTA) 등 많은 요인이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늘 한 말이지만, 농업 부문의 어려움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지 권익위 차원에서 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탁금지법으로 내수를 진작시키거나 농가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설 연휴에 비해 올 설 기간 축산 과일 수산 등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의 판매는 17.4%, 5만∼10만 원대 선물세트 판매는 18.7% 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법 개정 효과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법이 없었을 때도 명절에 선물세트가 집으로 오는 국민이 얼마나 됐을까요. 더 큰 혜택은 농가 소득을 핑계로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가져간 것 아닌지요.

“시행령 개정으로 한우가 더 팔리고, 굴비 판매가 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경제지표로 보면 내수 진작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만약 이런 점이 확인이 된다면 이제 더 이상 (법 때문에) 가액을 조정하라는 말도 나오지 않겠지요….”

―청탁금지법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많습니다.

“모든 국민이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농수축산물은 10만 원), 경조사비 5만 원을 적용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법 적용 대상이 아닌 사람은 얼마를 주고받든 상관없습니다. 또 법 적용 대상자들도 받는 것이 안 되는 것이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친구에게는 50만 원을 주든 100만 원을 주든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셨나요?) 물론이죠. 제 친척이 결혼하면 저도 10만 원보단 더 내야죠. 하하하.”

―전임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특별히 당부한 것이 있습니까.

“취임하고 몇 차례 뵀는데…, 당초 정부안에 있었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빠진 게 좀 아쉽다고 했습니다.”(이 규정은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나 가족이 인허가, 계약, 채용 등에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부정청탁금지와 함께 청탁금지법의 양대 축이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제정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적용 대상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확장시키면 법의 명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지요.(정부 원안은 국공립학교만 있었으나 형평성을 이유로 사립학교가 포함됐다. 언론사도 공직유관단체인 KBS, EBS만 대상이었으나 같은 이유로 모든 언론사로 확대됐다)

“그런 부분이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일단 헌법재판소가 대상 확대가 과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공직자만 대상으로 했다면 법의 명확성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지고 성찰하는 데 기여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한쪽에서는 청렴을 외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2016년 공무원 소청심사 인용률이 36.2%에 달할 정도로 징계를 완화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소청심사제도는 공무원 또는 교원이 징계를 받은 경우 이에 대한 취소·감경을 요청하는 제도. 인용률 36.2%는 소청 신청자 중 36.2%가 징계 감경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저도 교원징계재심위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제도가 아마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은 경우의 구제 차원 제도여서…. 아마 원 처분보다 더 센 처분을 할 수는 없게 돼있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지요. 우리 위원회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요청이 공직자 부패를 엄격히 처벌해달라는 것입니다. 일벌백계,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그래서 2014년 부패공직자 현황 공개, 징계 감경 금지 등 ‘부패행위 처벌 정상화 방안’을 권고한 적도 있는데…. (소청심사위는 유형별 감경률 통계조차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경우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아래 들어가 있죠. 취지 자체가 교원 권익을 위한 입장이라 이런 구조적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가장 큰 문제가 청탁에 의한 채용이고, 이것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채용비리를 뿌리 뽑겠다면서 한편으로는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는 것은 안 맞는 것 아닌지요.

“핵심적인 질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페어플레이어 클럽(Fair Player Club)의 반부패 서약 선포식에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우리가 소소한 부패는 잡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크고 구조적인 부패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왔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금품 수수보다 더 큰 게 부정청탁이고, 그중 하나가 채용비리인데…. 저는 이 부분이 낙하산 문제도 있지만, 지역 토착세력의 카르텔형 부패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뿌리 뽑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한창입니다. 5만 원 이상 선물은 금지하면서 얼마를 내는 지 제한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출판기념회는 왜 제재하지 않는지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지는 고민인 부분입니다. 출판기념회 현장에서는 책을 못 팔게 하고 서점에서만 팔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고, 또 그렇게 금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죠. 금지하려면 입법을 해야 하니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제도 개선은 적극적으로 제안할 계획입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책을 정가로 파는 안부터 수입·지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는 안, 출판기념회 자체를 폐지하는 안 등의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되고 현 20대 국회에서는 아직 제출된 관련 개정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사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돼도 그분들이 통과시키지는 않겠지요?

“하하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청탁금지법#김영란법#안희정 전 충남지사#공무원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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