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투 혁명, 사법처벌 넘어선 사회적 각성의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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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미투 대책으로 형법 개정을 통해 권력형 성범죄 처벌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업무상 위력·위계에 의한 간음죄와 추행죄는 법정형 상한을 각각 징역 5년과 2년에서 10년과 5년으로 두 배 이상 올리고 공소시효도 10년, 7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발될 두려움 없이 피해 사실을 공개할 수 있도록 미투 폭로에는 ‘위법성 조각(阻却) 사유’를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대체로 필요한 대책이다. 처벌이 강화되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 건 당연하다. 다만 미투를 사법 처벌의 문제로만 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처벌을 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증거 수집은 폭로와는 또 다른 문제다. 폭로 대상에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것도 적지 않고 피해자 자신이 복잡한 사법 처벌까지 가길 원치 않는 폭로도 있다. 사법 처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오히려 미투 운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미투는 여성의 직장 진출은 활발해졌지만 여성을 동료로 대하는 직업의식은 성숙하지 못해 발생한 문화지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미투 대책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대대적인 사회적 각성(覺性)이 동반돼야 한다. 많은 잘못된 행동이 남성 위주 사회의 일상화된 고질적 관념에 반성 없이 자신을 맡겨버린 데서 비롯됐다. 교육과 문화예술에서부터 시대에 뒤처진 마초적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투 운동은 주로 유명인의 성범죄를 폭로함으로써 그들의 견고한 명성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에 대한 폭로는 관심도 끌지 못하고 폭로한 여성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미투 운동이 지닌 한계다. 성폭력에 더 많이 노출돼 있지만 어디 가서 호소하지도 못하는 이주여성 등 미투 사각지대의 여성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처럼 미투 운동이 맹렬한 나라도 드물다. 우리 사회가 성적 억압이 심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분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와 비슷한 유교 문화 전통을 지닌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에 별 반향이 없다. 외침도 반향이 없으면 소용없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은 터널의 끝에 남녀가 서로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며 일하는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미투 혁명#권력형 성범죄 처벌 강화#위법성 조각 사유#미투 운동#미투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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