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당했다면… 다이어리 기록하고 카톡 보관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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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권하는 상황별 대처 요령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 씨(33)는 8개월 동안 네 차례 피해를 당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고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조사한 성폭력 피해자 206명 중 158명(76.7%)도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가해자의 위세에 눌린 탓이 크지만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성폭력 피해 상담 전문가 7명에게 상황별 대처법을 들어봤다.

사업주나 상사가 갑자기 성범죄자로 돌변했을 때 현장에서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특히 단둘이 출장을 간 상황이라면 더욱 난감하다. 이처럼 목격자도, 물증도 없다면 무엇보다 피해 사실을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게 중요하다. 가해자의 사과를 전제로 합의할지, 처벌이나 징계를 받게 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을지 결정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추후 겪게 될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느냐가 가해자를 옭아맬 최대 무기다.

피해 사실은 A4용지나 메모지에 낱장으로 적어두기보다 다이어리나 일기장, 블로그 등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곳에 남기는 게 좋다. 가해자가 “나중에 꾸며서 작성한 것이 아니냐”며 따질 때 증거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만약 사건이 음주 후 호텔 내에서 이뤄졌다면 술집 영수증이나 호텔 주차기록 등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진술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전후로 같은 차를 탔다면 블랙박스 영상과 음성이 지워지기 전에 반드시 백업해 두는 게 좋다. 차 안에서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가해자와의 대화나 행동으로 사건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성폭력은 회식 중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사건을 목격한 직장 동료들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가해자가 상사라면 이들도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탓이다.

동료의 증언은 반드시 사실확인서나 진술서 등의 형태로 작성해야 증거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사건 직후 동료나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에 피해자가 무슨 일을 당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상담한 내용이 있다면 나중에 강력한 증거 자료로 쓸 수 있다. 동료와 통화한 내용을 녹음하는 것도 법적으로 허용된다.

성폭력 가해자가 사내 영향력이 막강해 사내 고충상담원(인사 및 노무 담당자)을 신뢰할 수 없다면 고용노동부가 전국 15곳에 위탁한 ‘고용평등 상담소’를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0505-515-5050)에선 공인노무사가 상담원을 맡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02-3141-9090)는 월 1회 변호사가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준다. 피해를 검경에 신고하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가해자와 말이 다르니 경찰 조사를 지켜보자”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고용노동청에 신고하겠다며 압박할 수 있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은 “고용부 홈페이지에서 ‘직장 내 성희롱 대응 매뉴얼’을 내려받아 출력한 뒤 인사 담당자에게 건네주며 ‘참고해 처리하라’고 은근히 재촉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미투#성폭력#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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