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오성윤]예비 사돈이 왜 내 양복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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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윤 잡지 에디터
오성윤 잡지 에디터
형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와 통화로 소식을 접한 나는 “야아, 잘됐네요”라고 답했다. 사실 좀 허둥지둥하는 투로 ‘야아’를 내질렀고 얼버무리듯 붙은 ‘잘됐네요’는 끝이 올라가 질문처럼 되어버렸으니 다시 한 번 그렇게 읽어주길 바란다. 장남의 결혼이라는 일대 행사가 부모님께 오직 희소식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삶의 고비마다 예상을 뛰어넘는 도량을 보여온 부모님은 이번에도 일말의 그늘 없이, 경사로운 어조로 소식을 전했다. 사실 문제는 늘 그들의 철없는 차남이었다. “아, 그럼 저 결혼식 날 슈트 입어야 하나요? 싫기도 싫지만 입을 게 없는데요.” 결국 시간이 있으니 걱정부터 하지 말자고 다독인 쪽은 어머니였다.

곧장 통화한 친구(체면치레에 식견이 있으며 빌리기 적당한 슈트를 보유한)도 마찬가지, 내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일렀다. 다만 그 근거는 좀 달랐다. “네 슈트는 너희 사돈 쪽에서 맞춰줄걸?”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그 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만 좀 징징대라. 너희 어머니는 한복 입어야 할 텐데.”

이 일화를 들려주면 누군가는 ‘정말 그렇단 말인가’ 하고 놀랐고, 누군가는 ‘정말 그것도 몰랐단 말인가’ 하고 놀랐다. 하지만 이런 암묵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양쪽이 마찬가지였다. 왜 신부 집안에서 시동생의 옷을 맞춰줘야 하는지, 왜 아버지가 서양 복식을 하고 어머니가 전통 복식을 해야 하는지, 예물이며 주례며 연회며 혼례 절차가 어떻게 이런 형식에 이르렀는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국내에 서양식 결혼 문화가 유입된 것은 130여 년 전이다.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시작됐는데, 대중으로 퍼져나가며 서양식 관혼상제에 깊이 뿌리박힌 종교적 색채는 걸러졌다고 한다. 이를테면 목사와 신부 대신 ‘주례’라는 역할을 만들고 교회나 성당을 대신해 ‘예식장’이라는 공간을 만드는 식으로, 독창적 결혼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형식을 흡수하며 정신은 대체하고자 했던 시도는 과연 성공했을까? 예식장 결혼이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은 1970년 전후로 박하게 따져도 그 역사가 50년이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남녀가 가장 자주 듣는 설명은 여전히 ‘원래 그렇게들 한다’거나 ‘요즘 그렇게들 한다’는 말이니 세월 동안 깊어지기는커녕 납작해진 것만 같다. 그런 답변일랑 ‘이 문화는 지극히 관행적인 동시에 지극히 임의적이다’라는 말과 다름없으니까.

너무 부정적인 시각이라고? 동의한다. 나는 예식장에서 늘 괴로워한다. 그 형식을 구성하는 당위들이 허약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과히 물질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가문 중심적이며, 성 역할 고착화에 충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찍이 에세이 ‘결혼식장이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오늘날의 결혼은 ‘참다운 감동’ 대신 ‘적당한 기능을 수행하며 파악이 가능한 감동’을 추구한다고 지적했다. 파악이 가능해야 요소요소를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좀 나쁘게 말하자면 교리(敎理)로부터 서양식 결혼의 헤게모니를 넘겨받은 것은 ‘결혼 산업’이었으며 ‘신실함’이라는 중심축은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못한 채 형식만 그럴싸하게 발달해온 것이다.

바라건대, 형과 형수가 애써 치르려는 의식이 그런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모종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두 사람의 출발점에 자신들이나 서로의 가족에 대한 실망부터 안기는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 예식에 들이는 나의 수고가 무엇이든 그건 이런 기원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모쪼록 둘의 하나됨과 무관한 내 슈트 따위는, 추호도 고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
#결혼#예물#혼례 절차#서양식 결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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