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문점 정상회담·‘비핵화’ 파격 합의… 김정은 진정성이 관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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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4월 말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3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 전에 남북 정상 간 직통전화(핫라인)도 설치하기로 했다. 북한은 특히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대북 특별사절단의 정의용 수석특사가 어제 오후 방북 결과 발표를 통해 밝혔다. 북측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측은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 나서겠다는 용의를 밝히고 대화 동안에는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확약했다고 정 수석특사는 전했다.

이번 합의는 예상했던 기대치를 훨씬 넘은 파격적 합의라고 평가할 만하다. 남북 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까지 동시에 진전시키겠다는 이번 합의는 오랜 대북 협상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대로 이행된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 관계의 급진전뿐만 아니라 북-미 비핵화 대화의 가동을 통한 대결 국면 해소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나아가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완전히 새로운 판이 짜일 수 있다는 기대도 가능하다.

특히 우리 정상이 으레 평양을 방문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던 남북 정상회담이 중립지대 판문점, 그것도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것은 김정은의 실용주의적이고 과감한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군사적 우발 사태 같은 긴급 상황도 양측 최고지도부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풀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엔 앞으로 정상회담과 이후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해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같은 남북관계의 전면적 복원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을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당장 4월 초 실시될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접어들면 한미 연합훈련이 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준에서 양해를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약’했다고 한다. 앞으로 상호불가침 협정을 뛰어넘는 보다 구체적인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합의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오전 김정은과 특사단이 수뇌상봉(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보도하면서 예고됐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김정은이 통일전선부에 속히 실무적 조치를 취하도록 ‘강령적 지시’까지 줬다고 통신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김정은의 평양 초청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한 만큼 이번 특사 방북에서는 그 여건과 추진 방향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그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천명한 ‘남북관계 대전환’ 방침에 따라 정상회담 개최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이번 우리 특사단에 대한 파격적 환대로 보여줬다. 김정은은 대남특사로 보냈던 여동생 김여정은 물론 부인 리설주까지 대동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번 합의는 핵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이라는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 보겠다는 몸부림일 것이지만, 대외관계의 전면적 개선으로 일거에 돌파구를 열겠다는 결단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의 너무 선선한 양보로 보이는 이번 합의가 과연 제대로 이행될지 의문을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사단은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 매체에선 비핵화는 고사하고 핵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한 언급도 없다. 정 수석특사는 김정은이 ‘비핵화 목표는 (김일성 김정일) 선대의 유훈’이라고 분명히 밝힌 점을 주목해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은밀히 핵개발을 지속한 떳떳하지 못한 전력(前歷)이 있다. 북-미 대화 중에는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겠다는 약속 또한 핵개발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 차원의 전술 아니냐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그렇기에 향후 김정은의 태도를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정 수석특사와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르면 내일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단 방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미국은 어제도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사건을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를 이용한 북한 소행으로 결론짓고 추가 제재 조치를 내렸다. 비핵화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며 설령 북-미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제재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런 ‘압박 속 대화’라면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의 관건은 김정은의 진정성이다. 합의의 실천만이 그걸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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