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진료소 무너질때 하늘 무너지는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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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 의료총괄 백구현 교수
강풍에 종합진료소 천장 와르르… 밤샘 복구해 문열자 IOC측 “기적”
노로바이러스 예방 마음 졸여… 폐회뒤 IOC “무결점 의료” 찬사 기뻐

백구현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강릉 지역 최고의료책임자(CMO)를 맡아 의료진을 지휘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백구현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강릉 지역 최고의료책임자(CMO)를 맡아 의료진을 지휘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백구현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61)는 평창 겨울올림픽 때 강릉 지역 최고의료책임자(CMO·Chief Medical Officer)를 맡았다. 서울대 의료진 104명과 전국에서 온 의료전문가를 지휘했다. 5일 만난 백 교수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아이스하키 첫 예선 경기가 열리던 지난달 14일, 강릉에는 초속 5∼10m 이상의 강풍이 불었다. 백 교수는 “서 있기도 힘든 그런 강풍은 태어나서 처음 접했다”고 했다. 이 강풍에 올림픽파크의 기념품 판매점 지붕이 뜯겼고, 공연도 중단됐다. 텐트형 건물 수십 채가 피해를 입었고, 부상자까지 생겼다.


종합진료소(폴리클리닉)의 천장도 강풍에 무너졌다. 추가 붕괴가 우려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시름에 잠겨 있는 백 교수의 어깨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료책임자가 툭 치며 말했다. “날씨를 통제할 수는 없다(You cannot control the weather).”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밤샘 복구 작업을 벌였다. 다음 날 오전 10시, 응급실이 우선 문을 열었다. 의료진, 인부 가리지 않고 모두 달려들어 흙먼지를 쓸고 닦았다. 오후 1시 반, 마침내 종합진료소를 100% 재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IOC 의료책임자는 믿기지 않는다며 “기적이다”를 연발했다.

노로바이러스 문제는 올림픽 기간 내내 신경을 써야 했다. 캐나다 의료단장은 “우리 선수가 감염된다면 당장 귀국하겠다”며 엄포 아닌 엄포를 놓았다. IOC 의료책임자도 “대책이 뭐냐”고 물었다. ‘올림픽의 성패가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이란 생각이 백 교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백 교수는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우선 호흡기 증세가 있으면 진료소 출입을 막았다. 입구에서 직원이 일일이 방문자를 체크했다. 감염이 의심되더라도 의사가 강제로 격리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백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와 상의해 역학조사관 2명을 진료소에 배치했다. 역학조사관은 현장에서 환자를 상대로 귀가, 격리, 입원 등의 조치를 내리도록 했다. 격리기간은 5일로 넉넉하게 잡았다. 전담팀을 두고 선수촌 숙소도 소독하기로 했다. 비로소 IOC 의료책임자가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다행히 철저한 예방 조치 덕분에 강릉에서는 선수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올림픽이 폐막한 다음 날, 행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백 교수는 그때 IOC 의료책임자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Flawless!” 의료서비스에 결점이 없었다는 찬사였다. 1350여 명을 진료하느라 모든 힘을 쏟았다.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사실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미리 구급차 동선을 파악하고 시설을 점검했으며,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환자 정보를 즉각 공유했죠. 두둑하게 노하우가 쌓였습니다. 이 노하우를 도쿄, 베이징 올림픽 관계자에게 전하는 것, 그게 의료책임자로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인 것 같습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평창올림픽#진료소#강풍#노로바이러스#백구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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