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칼럼]이주여성들의 ‘외칠 수 없는 미투’ 대책도 함께 세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5일 2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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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성폭력 막을 제도개선 때 이주여성들의 고통 외면해선 안돼
인권국가로 가는 이정표 세워야

조은아 국제부 기자
조은아 국제부 기자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한국여성대회장.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온 주부 김유경 씨가 왼손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외칠 수 없는 이주여성을 응원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오른손에는 한글을 모르는 이주여성을 위해 ‘우리는 같은 여성입니다’란 영어 피켓을 쥐었다. 김 씨는 본보의 최근 기획기사 ‘이주여성들, 외칠 수 없는 미투’에서 성폭력 피해를 알리고 싶어도 고용주나 한국인 남편의 추방 위협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사연을 접하고 집회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는 “몇 해 전 미국에서 생활하며 힘든 처지의 이민자를 배려하는 게 도리라는 걸 직접 보고 느꼈는데 한국의 현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주여성 단체들도 이날 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미투’를 외쳤다.

김 씨를 비롯한 여러 독자는 이 기사가 보도된 뒤 e메일과 기사 댓글로 ‘이주여성의 알려지지 않은 피해를 더 밝혀 달라’ ‘이참에 이주여성의 피해를 조사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독자들은 억울한 피해가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곳곳에 묻혀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경기 안산시 원곡법률사무소는 본보 보도 첫날인 지난달 27일 사무소 블로그에 기사를 소개하며 비슷한 사건을 공개했다. 공장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을 보호해 달라고 변호사가 공장 사장한테 부탁했지만 3일 만에 다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여성은 성추행 당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쇠파이프를 들었다가 오히려 폭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독자들이 이주여성의 미투를 지지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여성대회 축사를 통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속 대책 속에 이주여성 구제책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취재 과정에서 본 부처 담당자들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주여성이 성폭력을 일삼는 고용주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라고 강조했다. “처리해야 할 내국인 근로자 사건이 워낙 많다”며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은 뒷순위에 두는 공무원도 있었다.

정부는 미투 후속 대책을 마련할 때 드러나지 않은 이런 여성들의 외침까지 꼼꼼히 살펴 야 한다. 공개된 문제 해결에만 그치는 대책 마련에 만족한다면 ‘소리치는 여성들에 못 이겨 땜질식 정책만 마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의 미투 후속 대책이 단순한 뒷수습에 그칠지,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이정표를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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