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작가 3인, 시대를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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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IMA Picks’
3040세대 이문주 김아영 정윤석, 회화-설치미술-영상미술 통해… ‘2018 대한민국’ 치열한 사유




일민미술관의 전시 ‘IMA Picks’는 예술가들이 시대를 읽어내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들이 증언하는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자는 취지를 지녔다. 위쪽 이문주 작가의 ‘모래산 건설’(172×344㎝)과 아래 왼쪽 정윤석 작가의 ‘눈썹’ 설치작품, 아래 오른쪽 김아영 작가의 ‘이동식 구멍들’ 영상의 한 장면. 일민미술관 제공
일민미술관의 전시 ‘IMA Picks’는 예술가들이 시대를 읽어내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들이 증언하는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자는 취지를 지녔다. 위쪽 이문주 작가의 ‘모래산 건설’(172×344㎝)과 아래 왼쪽 정윤석 작가의 ‘눈썹’ 설치작품, 아래 오른쪽 김아영 작가의 ‘이동식 구멍들’ 영상의 한 장면. 일민미술관 제공
미술 작품에 시대정신(zeitgeist)을 담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거창할 필요도 없다. 한 시대의 보편적인 정신이나 태도가 잘 배어 있는지가 관건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추구하지만 쉽지 않은 길. 특히 현대미술은 수용자 입장에서도 가늠이 어렵다. 하지만 현재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IMA Picks’에 참여한 작가 3인은 최소한 그 시대정신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건 자명해 보인다.

이문주(46) 김아영(39) 정윤석 씨(37)는 국내외 예술현장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며 주목받아온 작가들. 회화와 설치미술, 영상미술 등 다소 이질적인 장르에서 작업을 해왔다. 굳이 이들을 묶은 전시를 개최한 이유가 뭘까.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은 ‘경계’를 공통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세 작가의 전시는 현대미술치곤 꽤 ‘친절하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소통방식이 명확하다고나 할까. 특히 2전시실에서 소개하는 이 작가의 전시 ‘모래산 건설’은 회화가 중심이라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동명 작품인 ‘모래산 건설’만 해도 그렇다. 크루즈 관광선 뒤로 펼쳐진 개발 현장. ‘4대강 사업’이 떠오르는 풍경이 어떤 경계를 얘기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걷는 사람’ 시리즈 등 다른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곳이 한반도 어디쯤이건 미국 보스턴과 독일 베를린이건, 재개발 혹은 철거 공간은 황량함이 가득하다. 미술관 측은 “작가는 화폭에 담은 장소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넘게 현장연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회화가 다큐멘터리로서 지닐 수 있는 에너지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다큐멘터리라면 3전시실에서 마주한 정 작가의 ‘눈썹(Lash)’은 그 최대치를 보여주는 전시다. 특히 영상으로 담은 마네킹과 섹스돌(sexdoll·성 행위에 사용하는 인형) 공장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다. ‘19금 사회고발 TV 프로그램’이 주는 자극과 닮았다. 작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왠지 서글퍼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낯설고 괴기한 분위기에서 인형을 제작하는 노동자의 무미건조한 손길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눈썹’이란 전시 제목은 인형 작업의 마지막 단계인 속눈썹 부착에서 따왔다고 한다.

김 작가가 주제로 다룬 ‘이주(migration)’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경계의 이슈다. 1전시실에 펼쳐진 개인전 ‘다공성 계곡’은 비교적 난해한 편이나, 극적 구성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페트라 제네트릭스라는 상상의 지하광물이 뜻하지 않게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며 벌어지는 얘기를 담았다.

자연과학에서 다공성(多孔性)은 내부에 많은 구멍을 가진 성질을 뜻하는데, 이야기 구조에서 논리적 허점을 일컫는 ‘플롯 홀’과 의미적으로 겹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구멍이 오히려 작가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맛이 있다. 작가는 “사회정치적 이슈지만 예술은 어떤 책임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시선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4월 29일까지. 학생 4000원, 성인 5000원. 02-2020-2083

조윤경 yunique@donga.com·정양환 기자
#이문주#김아영#정윤석#일민미술관#ima p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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