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선배’ 연장 마지막샷 성공하자 전국이 “만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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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컬링, 日에 극적 설욕 결승행… 25일 오전 스웨덴과 격돌

근엄한 표정으로 ‘안경 선배’로 불렸던 주장 김은정(28)은 승리 직후 안경을 벗은 채 관중석을 향해 손키스를 날렸다. 그리고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강릉 컬링센터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다 긴장감에 숨죽였던 관중석에서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오던 그 순간, 전국이 만세 소리에 휩싸였다. 김은정의 고향 경북 의성은 함성과 눈물로 가득했다.

‘일본 넘고 결승 가즈아∼’ ‘의성의 딸 은정아 金길만 걷자’.

각종 손팻말을 든 할머니 아저씨 오빠 동생들이 가득한 의성여고 체육관. 600여 명의 주민과 학생들은 경기 내내 ‘헐(서둘러)’과 ‘업(스위핑을 멈추고 기다려)’ 그리고 ‘영미’를 외쳤다. 김은정이 마지막 던진 스톤이 하우스 중앙에 안착하며 연장 승부를 끝내는 순간 주민들은 일제히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자리에 앉아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선영(25)의 고모 김순자 씨(60)는 “우리의 영웅 앞에는 이제 금메달뿐입니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며 눈물을 훔쳤다. 의성군 토박이 김경재 씨(60)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이렇게 많이 모여 응원한 적이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경기 내내 체육관에서는 ‘희로애락’이 반복됐다. 10엔드에 승리를 손에 잡은 듯했지만 경기가 연장전으로 접어들자 “아”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일부 학생은 스톤이 하우스를 향할 때마다 손으로 눈을 가렸다. TV에서 김경애 선수의 “쨀까요?”(스톤을 쳐서 밖으로 보낸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는 목소리가 들리자 주민들은 “째뿌라! 째뿌라!”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오전부터 의성에서는 일터마다 경기를 앞두고 흥분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3시간 전부터 주민 100여 명이 태극기와 피켓 등을 들고 체육관을 찾기 시작했다. 10대부터 80대까지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플로어(floor) 컬링장’에서 “자, 세게 던져” “영미야!” 등을 외치면서 스톤을 날렸다.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로 만든 소시지와 과자 등을 먹으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주민들도 있었다.

경기가 열리는 강원 강릉에 가지 않고 의성에 머물고 있는 선수 가족들은 TV를 지켜보며 선수들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김은정의 친척 한월선 씨(67·여)는 “은정이가 개울물에서 물놀이하던 때가 생각난다. 잘 커줘서 고마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영미(27), 김경애(24) 자매의 큰어머니 배경숙 씨(65)는 “집에서 훈련장이 가까워 (두 선수가) 훈련이 끝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돌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푸짐하게 한 상 차려주겠다”고 말했다.

의성여고 총동창회 회원 50여 명은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한 현수막과 피켓을 제작해 모교를 찾았다. 경북 지역뿐 아니라 서울과 대구 등 다른 지역에서 온 회원도 있었다. 정희옥 의성여고 총동창회 부회장은 “‘팀 킴’의 선전으로 동창회도 다시 부흥하고 있다. 의성여고를 위한 큰 축제를 만들어준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팀 킴의 후배인 의성여고 학생들도 방학 중이지만 50명 가까이 학교를 찾았다. 이세나 의성여고 학생회장은 “일요일 결승 때는 전교생을 모아 선배들에게 힘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전 국민이 지켜보며 열렬한 응원을 보냈지만 쉽지 않았던 승리였다. 한국은 6-4로 앞서던 7엔드 마지막 스톤을 던져 1점을 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스톤을 일본 쪽 스톤과 같이 내보내며 0-0 승부를 선택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래야 8엔드 그리고 10엔드에 ‘후공’으로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컬링은 나중에 스톤을 굴리는 후공이 득점에 유리한 종목이다. 한국은 2, 3점 차를 유지하며 앞서 나갔다. 한국과 일본의 컴퓨터처럼 정교한 투구가 이어지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7-6으로 앞서 있던 10엔드 마지막 스톤 처리 과정이 문제였다. 김은정이 보낸 스톤은 하우스 중심에 있던 일본 스톤을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스톤보다 먼 위치에 멈췄다. 결국 두 팀은 ‘엑스트라 엔드’(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 분위기가 넘어온 건 서드 김경애가 6번째 투구를 통해 더블테이크아웃(상대 스톤 두 개를 한꺼번에 쳐내는 일)에 성공하면서부터. 일본은 작전타임을 부른 뒤 가드를 놓아 길을 가로막는 전술을 구사했지만 한국 스킵 김은정이 하우스 중심에 있던 일본 스톤을 밀어내며 승기를 굳혔고, 마지막 스톤을 중심에 놓으며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의성=신규진 newjin@donga.com·정현우 / 강릉=정윤철 기자
#여자컬링#준결승#결승진출#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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