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팥죽 한 그릇, 행운 한 숟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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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의 새알팥죽. 임선영 씨 제공
‘동지팥죽’의 새알팥죽.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설날이 지났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배부르게 들었다. 정말, 당신은 복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시간조차 초조함과 불안함이 감돌고 있다면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행운 바라기가 되기보다는 불행을 피하는 편이 백배 낫다고. 역설적이지만 일생일대의 행운은 가장 불안하고 불행할 때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쯤 먹어야 할 음식은 명료하다. 액운을 씻는 음식 팥죽 한 그릇.

조상들은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철학적이지만 꽤 합리적이기도 한 방편을 써 왔는데 그게 바로 팥이다. 팥죽은 우리 역사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음식으로 기록됐다. 붉은색은 잡귀를 몰아내는 주술적 역할을 했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긴 겨울의 밤을 맞이했다. 그 이유는 중국 고사에서부터 유래한다. 공공(共工)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아들이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동짓날에 죽었다. 죽은 아들이 역질 원귀가 돼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자 그는 아들이 생전에 싫어했던 음식이 팥죽임을 기억하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어 원귀를 쫓았다. 그 이후로 팥죽은 가신(家神)에 올리고 가족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전해졌다.

오늘날 집들이나 개업 날 팥 시루떡을 돌리거나 아이의 백일에 팥 수수떡을 올리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액운을 쫓아내기 위한 주문이다. 특히 팥죽이나 팥떡은 혼자 먹는 법이 없다. 가족 혹은 이웃에게 돌리고 나눠 먹는다. 이 행위의 바탕에는 너의 불행은 나의 쾌락이 아니라, 당신이 무탈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착한 인류애가 깔려 있다.

요즘 대부분의 가정에는 가마솥이 없다. 그렇다고 편의점 전자레인지를 빌려 간편죽을 돌려 먹지는 말자.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아직도 재래식으로 새알팥죽을 하는 집들이 있다. 아래 추천하는 식당들은 소박하지만 옛날 어머님의 정성이 살아있는 곳이다. 국산 팥을 구해 껍질을 체로 걸러 앙금을 곱게 내고 설탕 대신 소량의 소금으로 간한다. 쌉싸름함과 달큼함이 밀당을 하고 입에서는 따스하나 배 속에 들어가면 허열을 식힌다. 주인장은 빛 고운 찹쌀로 쫀득한 새알을 빚는가 하면 팥칼국수의 국숫발도 직접 밀어낸다. 팥죽과 최고의 궁합을 내는 김치는 또 어떤가. 고향의 맛을 살려 청량하게 간이 배고 그 시원함이 사이다 뺨치는 진짜 김치를 선보인다. 팥죽과 함께 방배동 동지팥죽은 들깨수제비, 사당동 신박사팥죽은 김치수제비, 옥합콩국수는 한우사골칼국수도 명물이라 곁들여 먹는 재미도 있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qea@gmail.com

○ 동지팥죽: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22길 27, 02-596-6272. 새알팥죽 8000원, 팥칼국수 7000원
○ 신박사팥죽: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7길 43, 02-587-1487. 옹심팥죽 8000원, 팥칼국수 7000원
○ 옥합콩국수: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204 제1층 제103호, 02-355-0559. 새알옹심이팥죽 8000원, 팥칼국수 7500원
#동짓날#팥죽#시루떡#새알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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