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로 천상에 오른 ‘美의 정신적 지주’… 빌리 그레이엄 목사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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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010년 4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왼쪽 사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모습.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과 1994년 두 차례 방북했다. 사진 출처 백악관·갓리포츠닷컴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010년 4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왼쪽 사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모습.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과 1994년 두 차례 방북했다. 사진 출처 백악관·갓리포츠닷컴
‘미국의 목사(America‘s Pastor)’로 불리며 20세기 개신교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것으로 평가받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사진)가 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AP통신은 암과 폐렴으로 투병하던 그레이엄 목사가 이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고 그의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70여 년간 개신교 복음주의의 리더로서 일반 신자들뿐 아니라 많은 미국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들의 목사님’으로도 불린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선정하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 톱10에 1955년부터 2016년까지 총 60회 선정돼, 이 분야의 최고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1918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인근의 농촌에서 태어난 그레이엄은 1940년 플로리다 성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목사가 된 뒤 1947년부터 ‘크루세이드(Crusade)’라는 명칭의 전도운동을 벌였다. TV 라디오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설교를 벌였고 대형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대규모 집회를 통한 부흥회를 수시로 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레이엄의 핵심적 성과는 20세기 전반에 잠시 후퇴했던 복음주의 개신교가 다시 영향력을 드높일 수 있도록 고무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는 그레이엄 목사가 총 185개국에서 약 2억1500만 명의 청중 앞에서 설교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 명을 대상으로 전도집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차례 대회에 모인 군중으로서는 최대 규모였다. 여의도광장에 화장실 시설도 변변치 않았는데, 대회가 끝났을 때 광장 바닥에는 휴지 한 장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의 방한은 국내 개신교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1992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일성에게 전했고, 1994년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그때 만난 김일성은 분명히 변화와 개방을 모색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의 손자 윌 그레이엄 목사는 201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특별하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파를 가리지 않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많은 대통령들과 직접 면담하고 개인적 친분을 이어가며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다. AP통신은 “그 어떤 복음주의 목사도 앞으로 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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