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횡단보도 설치” “육교를 다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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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서울 종로구 신영동과 평창동 길에 있는 두 군데 육교를 찾아가서 보면 ‘이것 때문에 이렇게들 필사적으로 싸우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도 모른다. 정확하게는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 정문 앞과 여기서 동북쪽으로 약 500m 가다 보면 있는 평창동 서울예술고등학교 앞 ‘육교가 있던 자리’다.

이 길을 “횡단보도로 건너야 한다” “아니다. 육교를 다시 세워서 건너야 한다”며 지난해부터 동네 나이 든 주민들과 세검정초교 학부모, 그리고 종로구청이 갈등을 빚고 있다.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두 육교는 지은 지 약 40년째 되던 2015년 안전정밀검사에서 D등급을 받아 지난해 11월 철거됐다. 종로구는 육교를 새로 지을 계획이었다. 육교 철골구조는 이미 만들었다. 종로구 계획대로라면 이달 육교를 세우고 다음 달 엘리베이터 공사를 끝내야 한다.

육교 재설치를 반대하는 신영동 노인들은 육교를 오르내리는 고통을 호소한다. 세검정초 학부모들은 아이들 안전이 위협을 받는다며 육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평창동 서울예고 앞도 주민은 횡단보도를 원하지만 서울예고 측은 학생들이 악기를 들고 곧바로 학교로 들어올 수 있는 육교를 선호한다.

종로구는 양 학교와 학부모 의견을 주로 수렴해 육교를 세우겠다는 뜻을 고집한다. 구 측은 “차량 속도가 빨라 횡단보도를 그으면 교통약자인 노인이 오히려 차에 치일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하면 이분들이 더 편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영동 일부 주민은 종로구가 육교 재설치를 밀어붙이려고만 한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공익감사는 만 19세 이상 300명 이상이 청구할 수 있다.

반대 측과 찬성 측, 그리고 종로구가 해결의 접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주민들의 보행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두 곳의 육교를 걷어낸 자리는 장막으로 덮고 칸막이로 막아 놨다. 그만큼 인도가 좁아졌다. 길을 건너는 사람이 많아 안전요원이 24시간 주민의 통행을 돕는다. 하지만 횡단보도 선을 그어놓지 않아 사실상 무단횡단이어서 위험천만이다. 방법은 없는 것일까.

비슷하지만 다르게 해결한 사례가 있다.

2016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초등학교 앞 육교가 철거될 때 학부모들은 불안해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이들이 차에 치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컸다. 반면 지팡이나 보조기구를 사용해 걸어 다니는 주민들은 횡단보도를 반겼다. 큰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해결책은 동작구가 내놨다. 구는 노량진초 앞 어린이보호구역 차량 제한속도를 기존보다 시속 10km 낮췄다. 속도위반 단속카메라도 설치했다. 학부모는 등하교 교통안전지도를 더욱 강화했다. 서울 강서구도 2015년 신월초 앞 육교를 철거하면서 보행자의 안전을 더 보장할 수 있도록 교통시스템을 강화했다.

종로구도 “그동안 육교 재설치에 대한 의견 수렴을 이미 했는데 너무한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반대 측을 설득할 수 있는 제안을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까지 있으니 된 것 아니냐’는 식은 무책임하게 들린다.

“일만 하려고 하면 엇갈리는 주민 불만 듣느라 어렵다”는 공무원들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관(官)이 결정하면 끝’이라는 과거 방식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다. 민주적으로 소통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종로구가 풀어야 한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육교#육교 재설치#평창동 서울예술고등학교#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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