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84>그때는 사이렌이 울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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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대천동에 있는 보령경찰서 망루(1950년 건축). 보통의 망루와 달리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한다.
충남 보령시 대천동에 있는 보령경찰서 망루(1950년 건축). 보통의 망루와 달리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한다.
시계가 흔치 않던 1950∼70년대, 낮 12시가 되면 정오 사이렌이 울리곤 했다. 밤 12시엔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이보다 30분 앞서 오후 11시 반에 통금 예비 사이렌이 울리는 곳도 있었다. 어느 지역은 소방서에서, 어느 지역은 경찰서나 면사무소에서 사이렌을 울렸다.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인 장항선의 대천역 인근. 충남 보령시 대천동 보령경찰서 옆엔 독특한 모양의 망루가 있다. 누군가는 “첨성대 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같다”고 한다. 안내판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대천경찰서가 남으로 후퇴하였다가 9·28 서울 수복 후 돌아왔으나 지방의 불순분자와 북한군의 잔당들이 성주산 일대에 은거하면서 대천의 치안질서를 위협하였다. 1950년 10월 초 당시 경찰서장 김선호가 지역주민의 협조를 받아 성주산 일대의 자연석을 운반해 축조한 치안유지용 망루이다.’

망루 높이는 10m. 자연석과 시멘트 콘크리트로 몸체를 만들고 윗부분은 8각 기와지붕을 얹었다. 망루 내부는 4층의 나무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망루 꼭대기에 오르면 대천 일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내부 곳곳에서 밖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총안(銃眼)을 22개 설치했다. 총안 주변엔 총탄 자국도 남아 있다.

그런데 경찰서나 형무소 망루치고는 모양이 지극히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몸통이 부드러운 유선형이다 보니 망루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혀 위압적이지 않다. 그 망루 표면을 담쟁이넝쿨이 휘감고 있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메말라 있지만 초록이 무성한 계절이 되면 푸르름이 장관을 이룬다.

6·25전쟁이 끝나고 1980년대까지 이 망루의 주요 기능은 사이렌을 울리는 것이었다. 화재가 발생했거나 민방공훈련이 있을 때 망루에선 어김없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오와 자정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사이렌은 멈췄다.

보령경찰서 망루는 평화롭다. 그러나 지난 시절을 기억하기엔 지나치게 정적이다. 망루의 입구를 막아놓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이제, 망루의 기억을 다시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 내부도 개방하고, 사이렌도 울리고,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생각을 바꾸면, 보령경찰서 망루의 사이렌이 대천의 독특한 문화상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
#보령경찰서 망루#대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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