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원재]이웃나라 올림픽 100% 즐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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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드디어 첫 골을 넣었습니다.”

“코리아! 코리아!”

14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의 식당에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첫 골을 축하하는 50여 명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앞에 앉은 중년 일본 여성은 “축하한다”며 기자에게 막걸리 건배를 제의했다. 한일 공동 응원을 주최한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추첨을 통해 경품을 증정하자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다. 함성이 잦아들기 무섭게 일본팀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세 번째 골을 넣었다.

“일본, 일본, 파이팅!”

이번엔 문화원 관계자와 기자가 축하할 차례였다. 일본, 대한민국, 코리아를 함께 연호했고 추첨과 환호성이 이어졌다. 기자가 일본인 참석자에게 “어느 나라를 응원하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나라 일본과 좋아하는 한국 둘 다요. 승부를 떠나 멋진 경기가 됐으면 합니다.”

참석한 일본인들은 문화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등 이른바 ‘한국팬’들. 중년 여성이 대부분인데 그중에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단기 서울유학을 다녀온 열성파도 있었다. 상당수는 한류 드라마를 계기로 흥미를 갖게 돼 관심사를 넓혀왔다. 한 참석자는 “최근 박민규 작가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일본어판을 흥미롭게 봤다”고 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20일 도쿄의 고서점가 간다진보정 한국 북카페에선 평창 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 출신 한국 작가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 열렸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온 참석자들은 “자연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1930년대 작품인데도 서정성이 뛰어나다”는 등의 감상을 쏟아냈다. 한 참석자는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는,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문장을 즉석에서 낭독했다. 참석자 중에는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50대 여성,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좋아한다는 60대 남성도 있었다.

일본 언론이 평창 올림픽 사전 준비 상황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했던 건 이미 알려진 대로다. 개막 직후에도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한 등으로 정치 올림픽이 될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국민영웅 하뉴 유즈루가 피겨 금메달을 따는 등 자국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 미디어센터의 충실한 서비스 등도 점차 기사화되고 있다.

화룡점정은 스피드스케이팅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였다. 고다이라 선수가 은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를 포옹하고 함께 링크를 도는 모습은 국경을 넘는 스포츠 정신과 우정의 상징으로 일본에서도 널리 보도됐다. 한 신문은 해당 장면에 양국 정상의 얼굴을 합성한 만평을 실었다.

물론 스포츠 문화 교류와 양국이 당면한 정치적 외교적 현안은 별개다. 그렇다고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신오쿠보 한국 식당에서 하나가 됐던 마음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이어진 한류의 재현까진 어렵더라도, 올림픽 전보다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웃 나라의 올림픽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이번에 일본을 지켜보며 던졌던 질문은 평창의 열기가 가라앉을 무렵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2년 후엔 도쿄에서, 다시 2년 후엔 베이징(北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그때는 한국이 올림픽을 화합의 장으로 만드는 ‘성숙한 이웃 손님’ 역할을 잘해내길 기대한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일본 코리아타운#평창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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