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재계 순위 5위의 롯데(매출 100조 원)는 격랑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 롯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을 키우려던 ‘뉴 롯데’ 건설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신 회장의 친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움직임에 따라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재개될 수도 있다.
21일 오후 3시 반부터 1시간 15분 동안 롯데홀딩스 도쿄 본사에서 열린 이사회에는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대표이사 등 이사진 7명이 참석했다. 이사진은 신 회장과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쓰쿠다 사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승인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처음 창업한 롯데는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동안 롯데그룹 총수는 한국과 일본 롯데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다. 이번에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롯데 역사상 처음으로 그룹 총수가 일본 롯데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게 됐다.
일각에서는 일본인 전문경영인들이 경영권을 장악한 뒤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 경영에 간섭하거나 독자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당장 일본 롯데홀딩스가 롯데 경영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 관계자는 “쓰쿠다 사장 등 일본인 경영진이 한국 롯데 경영에 간섭해서 얻을 실익이 없다”고 했다. 신 회장과 공동대표를 맡아 온 쓰쿠다 사장은 2015∼2016년 형제 간 경영권 분쟁 당시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줘 신 회장에게 우호적인 인사로 꼽힌다.
롯데가 우려하는 건 6월로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의 정기 주주총회다. 신 회장의 이사직 유지 여부는 주총을 통해 결정된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광윤사(28.1%)이며, 신 전 부회장은 광윤사 주식의 50%+1주를 가진 최대주주다. 신 회장의 롯데홀딩스 지분은 1.4%에 불과하지만 종업원지주회사(27.8%)와 관계사(20.1%) 등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해 지금껏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홀딩스 이사회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6월 주총에서 형사책임을 추궁당한 신 회장의 경영체제를 존속시켜 중대한 위기를 불러온 롯데홀딩스 각 이사의 책임 역시 극히 무겁다”며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현재의 경영체제,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쇄신과 재건이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주총에서 이사진 전면 재편을 시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총 결과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이후 4번 열린 주총에서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전력이 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이번에는 과거 주총과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91개 계열사 중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등 51개사를 지주사로 묶으며 일본 롯데홀딩스의 영향력을 낮추려 했다. 지주사는 신 회장이 지분 10.5%를 가진 최대주주지만 호텔롯데도 6.5%를 갖고 있는 등 완전히 독립된 상태는 아니다.
여기에다 그룹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관광과 화학(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롯데물산)은 편입하지 못해 ‘반쪽 지주’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은 일본 측이 지분 99%를 가진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의 영향력을 희석시킬 계획이었지만 호텔롯데의 상장 추진도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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