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류 연극보다 저열한 문화계 ‘괴물들’의 성폭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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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의혹이 잇따라 폭로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그 회견마저 리허설을 거친 ‘연극’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희단거리패 배우인 오동식 씨에 따르면 이 전 감독은 마지못해 회견에 나서며 주요 단원들과 사전 연습을 했다. 변호사에게 자문한 뒤 성폭행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기로 하고, 불쌍한 표정까지 연습했다는 게 오 씨의 주장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을까 일말의 기대로 회견을 지켜봤던 피해자들은 또다시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지방대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배우 조민기 씨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조 씨는 캠퍼스 인근에 마련한 오피스텔로 학생들을 불러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씨는 소속사를 통해 “명백한 루머”라고 반박하다가 구체적인 피해 증언들이 이어지자 그제야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로 드러난 문화계의 성폭력은 ‘문화 권력’의 추악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화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창작을 위한 ‘자유로운 영혼’을 강조하면서도 현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했던 탓이다. 권위와 명성을 가진 소수 인사가 ‘왕’처럼 군림하며 문제 제기도 쉽지 않은 구조였다. 특히 ‘이윤택 파문’으로 대표되는 연극계 사건은 ‘권력관계에 기반을 둔 폭력’이라는 성폭력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냈다. 특유의 도제 시스템과 맞물려 이른바 ‘가난하고 배고픈’ 연극인 지망생들의 꿈과 미래를 담보로 오랜 기간 무시로 성폭력을 일삼은 ‘괴물’이 자랐다.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을 고발하며 시작된 미투 운동은 정·재계, 스포츠계로 번져 이제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의 미투도 남성중심적 성관념과 그릇된 권력관계를 깨려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침묵과 책임 회피로 일관한다고 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그간 쉬쉬하며 성폭력을 사실상 방관했던 문화계의 철저한 자성 없이는 악습을 청산할 수 없다. 성폭력은 ‘과거의 나쁜 관습’이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없는 범죄다. 정부의 실태 조사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적 추궁이 필요하다.
#이윤택#이윤택 성폭력#미투#연희단거리패#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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