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일 맡겨줘” 평창 광내는 은발봉사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대관령면 사는 7080 어르신 10명… 혹한속 남들 꺼리는 화장실 청소
“치워도 쌓이는 쓰레기 힘들지만 올림픽 성공에 기여한다니 보람”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중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환승주차장 간이화장실 청소를 맡고 있는 대한노인회 대관령분회 소속 어르신들. 왼쪽부터 김광기 사무장, 권화자 할머니, 조욱현 분회장. 평창=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중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환승주차장 간이화장실 청소를 맡고 있는 대한노인회 대관령분회 소속 어르신들. 왼쪽부터 김광기 사무장, 권화자 할머니, 조욱현 분회장. 평창=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물이 또 안 나와요.” “쓰레기가 산더미네.”

오가는 사람들의 말이 들릴 때마다 어르신들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손마다 각종 청소도구가 들려 있었다. 대한노인회 대관령분회 소속 어르신들이다. 요즘 이들은 매일 주차장으로 출근한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 환승주차장이 일터다.

대관령 환승주차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해 조성됐다. 관람객은 모두 이곳에 차량을 세운 뒤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경기장으로 향한다. 승용차 4489대와 버스 같은 대형 차량 292대를 동시에 세울 수 있는 규모다. 엄청난 크기만큼 하루 종일 이용객이 끊이지 않는다. 간이화장실도 비어 있는 시간을 보기 힘들 정도다.

올림픽 기간 내내 이 간이화장실 청소를 대관령면 어르신들이 맡았다. 75∼81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어르신들이 나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 청소업체가 인력을 모집할 때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정을 전해 들은 어르신들이 “내 고장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 우리라도 나서자”며 지원했다.

어르신 10명은 대관령 환승주차장과 횡계주차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규모가 큰 대관령 주차장에서는 6명이 2개 조로 나뉘었다. 1조는 오전 8시∼오후 5시, 2조는 오후 1∼10시 근무한다. 이곳에만 남녀 각 8개 동의 간이화장실이 있다.

전체 화장실을 한 번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더러워진 변기를 닦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버리고, 떨어진 화장지를 채워놓다 보면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틈이 없다. 변기가 막히거나 급수탱크의 물이 떨어져 작동이 안 되는 경우도 잦다. 수리기사가 있지만 바쁠 때는 변기 뚫는 것부터 간단한 수리까지 어르신들의 몫이다. 청소 한 번 할 때마다 100L 쓰레기봉투가 4, 5개씩 나온다.

노인회 대관령분회 사무장을 맡고 있는 김광기 할아버지(75)는 “막상 일을 하려고 하니 도저히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 고장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노인들이 조금이라도 기여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우리의 수고가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발전된 고장을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노인회 대관령분회는 일찌감치 올림픽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탰다. 평창 문화올림픽의 막이 오른 3일 대관령면에 사는 어르신 300여 명이 청사초롱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당시 이들이 들고 나온 청사초롱은 대관령분회 회원들이 직접 철사를 구부리며 5일 동안 만든 것이다. 어르신들은 올림픽 폐막 때까지 청소 일을 계속한 뒤 업체로부터 받은 교통비와 식대 등 일당 중 일부를 노인회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평창=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대관령 환승주차장#노인회 대관령분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