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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퍼뜨린 죄!… 네덜란드 외교장관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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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퍼뜨린 죄!… 네덜란드 외교장관 아웃

동정민특파원 입력 2018-02-15 03:00수정 2018-0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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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러시아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는 비난을 계속 받아왔다. 그러나 그건 누군가의 고장 난 상상이 만들어낸 비판이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러시아대사관은 12일 “네덜란드 정부는 그동안 러시아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발언을 끊임없이 해 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돼 비판받아 온 러시아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에 반격의 빌미를 내준 이는 할버 제일스트라 네덜란드 외교장관(사진)이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논란을 일으키다가 13일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네덜란드와 러시아의 공수(攻守)가 뒤바뀌게 된 이번 스캔들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일스트라 장관은 자신이 속한 자유민주당(VVD) 콘퍼런스에서 “네덜란드 최대 석유화학회사 셸에서 근무하던 2006년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차(대통령 별장)에서 주최한 기업인 미팅에 참석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대(大)러시아 제국’ 구상을 밝혔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대러시아 제국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발트 국가들이 포함될 것이고 카자흐스탄도 들어오면 좋다”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제일스트라 장관은 지난해 3월 네덜란드 총선 전까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총선에서 네덜란드 국민의 반러시아 정서를 자극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드러난 푸틴 대통령의 확장정책은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된 구상이고, 러시아는 결국 유럽의 최대 위협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효과를 냈다. 당시 총선에서 경쟁했던 극우 정당 자유당의 친러시아 성향을 겨냥한 발언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2014년 말레이시아항공 보잉777 여객기 추락사고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당시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비행기가 우크라이나에 추락해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네덜란드 조사단은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쏜 러시아 미사일에 맞아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일스트라 장관은 VVD의 총선 승리 후 지난해 10월 연정 구성에 역할을 한 뒤 외교장관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지난달 말 네덜란드 언론에서 “그가 2006년 당시 셸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건 맞지만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미팅 자리에는 없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야당의 공격이 시작됐다. 제일스트라 장관은 12일 더 폴크스크란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털어놓으면서도 “그래도 푸틴의 발언은 사실이다. 다만 (푸틴의 발언을 전한) 소스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미팅 참석자이자 푸틴의 발언을 전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당시 셸의 최고경영자 예룬 판데르 베이르가 언론 인터뷰에서 “푸틴과의 만남 이후 광범위한 대화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대러시아’라는 발언은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표현일 뿐”이라며 “나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고 특히 카자흐스탄 같은 특정 국가 이름을 언급한 적도 없다”고 말해 제일스트라 장관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결국 제일스트라 장관은 13일 의회에 출석해 “대러시아 발언은 나의 정치적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며 “네덜란드는 의심받지 않는 외교장관을 가져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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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으로 지난해 3월 총선 후 7개월 만에 간신히 4개 정당을 묶어 연정을 구성한 마르크 뤼터 정부는 출범 4개월 만에 위기에 처했다. 네덜란드 하원 150석 중 절반에서 겨우 한 석이 많은 76석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한 뤼터 총리는 12일에만 해도 “제일스트라 장관의 발언은 현명하지 못했지만 가짜 뉴스라고 보긴 어렵다”고 옹호했었다.

러시아로서는 반격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제일스트라 장관 사임 전 러시아 외교부는 13일 “전례 없는 반러시아 총선 캠페인 때문에 러시아와 네덜란드 관계에 그림자가 졌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러시아#가짜뉴스#네덜란드 외교장관#제일스트라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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