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일자리 30만개 무기로 정부지원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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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수설 나오는 배경은
철수설 GM 자금지원 딜레마

《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배리 엥글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지난달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회동한 데 이어 최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을 다시 만나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16년 전 이미 2000억 원 넘게 출자한 정부가 적자가 쌓이고 있는 한국GM에 신규 대출이나 증자를 할 경우 밑 빠진 독에 혈세를 쏟아붓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빠질 수 있다. 반면 한국GM이 철수하면 대량 실업이 생길 수 있어 지원 요청을 마냥 외면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
 

2일 본보 취재팀이 찾은 전북 군산시 군산국가산업단지 내 한국지엠(GM) 군산공장 정문 인근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자동차 부품을 적재한 트럭, 완성차를 옮기는 수송용 차량 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 공장 근로자들로 가득 찼던 40석 규모 인근 식당에는 손님이 3명뿐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두현태 씨(50)는 “군산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주변 하청업체도 상당수 문을 닫았고 용지는 임대 매물로 나왔다”고 전했다. 근로자 A 씨는 “일주일에 공장을 돌리는 날은 고작 3, 4일 정도”라고 했다.

○ GM “신규 대출이나 증자하라” 압박

한국GM 군산공장
한국GM 군산공장
군산공장은 8일부터 이달 말까지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평상시라면 중소형 승용차 크루즈와 다목적 차량 올란도를 연간 26만 대 생산할 수 있지만 지난해부터 가동률이 20%대로 떨어졌다. 한때 3600명에 육박했던 근로자 수는 22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GM본사가 한국에서 발을 빼려 한다는 ‘철수설’이 3년 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군산공장의 생산 부진 때문이다. 한국GM은 군산을 포함해 인천 부평구, 경남 창원시, 충남 보령시까지 총 4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평1공장과 창원, 보령은 100% 가까운 가동률을 보이고 있으며, 부평2공장의 가동률은 약 60%다.

급기야 GM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한국에 머물렀던 배리 엥글 미국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이달 7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각종 지원 방안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엥글 사장이 이 회장을 만나 신규 대출 및 증자 등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GM이 한국 정부와의 협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은은 실사 등을 통해 한국GM의 경영 전반을 들여다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엥글 사장은 지난달에도 한국을 찾아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등과 면담했다. 고 차관과의 면담에서는 금융 지원과 유상증자, 재정 지원 가능성을 포괄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GM이 한국 정부에 총 3조 원의 유상증자를 할 계획을 전하면서 지분 17%를 보유한 산은의 참여를 요구했다는 말도 나온다. 지분 비율대로라면 산은은 약 5000억 원을 출자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규모가 언급된 정황은 아직까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 ‘혈세지원 딜레마’에 빠진 정부

한국GM에 대한 GM 측의 자금 지원 요구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GM은 2대 주주인 산은에 회계장부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신규 대출과 증자 등 지원만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1일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산은은 한국GM의 적자가 지속되자 주주감사권 행사를 통해 한국GM의 매출 원가와 본사 관리비 부담 규모 등 116개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GM 측은 6개만 제출하고 나머지는 “기밀 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GM이 자회사인 한국GM에 3조 원 규모(2016년 말 기준)의 대출을 해주면서 연 4.7∼5.3%에 이르는 고금리 대출을 해준 것도 도마에 올랐다. 국내 은행은 한국GM의 적자를 이유로 대출을 거절하고 있다. 적자 상태인 한국GM이 본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해 해마다 1000억 원의 이자를 자회사에서 챙겼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M이 한국 정부의 방침과 의지를 테스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GM과 관련된 일자리는 직간접적으로 30만 개가 넘는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정부가 결국은 지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정부 당국자와 산은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GM의 유동성 위기를 완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국GM의 부채 규모는 공개된 것만 약 3조 원 규모로 적자가 누적돼 자본금을 모두 까먹은 자본잠식 상태다. 정부 지원으로 당장 급한 불을 끈다고 해도 추가 부실이 생긴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하다가 뒤늦게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GM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정부 지원을 바라는 것 자체가 경쟁력 하락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가 GM의 전략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군산=김준일 jikim@donga.com / 강유현·이은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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