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터키 “자치정부 막아라” 소탕전… ‘IS격퇴 공신’ 쿠르드 ‘팽’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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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국경 넘어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 격멸” 나선 이유는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격멸하기 위해 시리아 아프린으로 진격한 터키군이 수렁에 빠졌다. 터키 현지 언론은 10일 터키 군용헬기가 YPG의 공격을 받아 아프린과 가까운 터키 남부 하타이에 추락하면서 조종사 2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다른 작전에서 9명이 추가로 숨지는 등 이날 하루에만 터키 군인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0일 터키군이 시리아 북서부로 국경을 넘어가 아프린 군사작전(일명 올리브가지 작전)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나온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터키군이 아프린의 산악지대와 깊숙한 터널에 막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터키가 지원하는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 마즈드 마흐순은 “우리는 여전히 진격하고 있지만 전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우 힘든 싸움”이라고 말했다. 브루스크 하사카 YPG 대변인은 “공중 폭격과 지상 포격에도 불국하고 22일 동안 터키군이 장악한 건 15개 마을뿐”이라며 “터키군은 진퇴양난의 늪에 빠졌다”고 조롱했다.

○ 터키는 왜 시리아 국경을 넘었나

YPG는 시리아의 쿠르드 정파인 민주연합당(PYD) 산하 무장단체로 미군의 지원을 받아 IS 격퇴전의 선봉에서 맹활약했다. YPG를 중심으로 소수 아랍계와 튀르크계가 2015년 10월 결성한 시리아민주군(SDF)은 지난해 10월 국제동맹군의 일원으로 IS의 수도 격인 락까를 탈환하면서 IS 격퇴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터키는 시리아 내전과 IS의 발호를 틈타 세력을 확대해온 YPG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다. YPG를 터키 내 분리주의 무장정파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된 테러조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PKK가 PYD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PYD는 현재 터키에 수감 중인 쿠르디스탄공동체연합(KCK)의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터키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90년대 시리아로 망명했을 때 설립됐다.

터키는 미국의 쿠르드 지원 확대 계획을 구실로 삼아 아프린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국제동맹군 대변인 라이언 딜런은 IS 재건을 막기 위해 지난달 14일 SDF를 중심으로 시리아 국경 병력 3만 명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터키는 “며칠 안에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며 강력 반발했고, 미국은 사흘 만에 “딜런의 ‘3만 양병안’은 실언”이라며 터키를 달랬다. 터키는 결국 지난달 20일 아프린 군사작전을 시작해 현재까지 YPG와 IS 조직원 1141명을 제거하거나 체포했다.

국제동맹군이 락까를 탈환한 이후 터키가 군사작전을 개시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터키는 자국 군이 시리아 북서부에서 군사작전을 시작해도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비밀리에 사전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IS 격퇴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에서 미군이 더 이상 시리아 북서부 쿠르드계를 지원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YPG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벌이기 위해 튀르크계 반군 포섭에 나섰고, 그 결과 지난해 11월 SDF에서 대변인 역할을 했던 튀르크계 탈랄 알리 실로 준장을 터키 연계 반군인 FSA로 전향시키는 데 성공했다.

○ 터키 내 1500만 시한폭탄

시리아 1800만 인구 가운데 쿠르드계는 약 17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분 터키와 국경을 마주한 시리아 북서부에 거주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터키에는 최고의 안보 위협이라는 사실이다. 터키에 거주하는 쿠르드계는 약 1470만 명으로 전체 인구(8160만 명)의 18%에 이른다. 터키가 지난해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의 분리 독립을 강력히 반대한 것도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터키 군사작전 개시는 IS 격퇴전에서 세력을 키운 YPG가 자치정부 설립을 요구하기 전에 싹을 제거하려는 속셈이다. 시리아 내 쿠르드자치정부 수립을 추진 중인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알다르 켈릴은 “현재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협상 중”이라며 “아사드 정권은 민주적 자치에 대해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수준을 넘어 연방정부 프로젝트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는 아프린에 이어 쿠르드가 통제하는 만비즈 지역으로 군사작전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라크까지 이어지는 우리 국경에서 테러분자가 없어질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며 “약속한 대로 만비즈에서도 테러범을 소탕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작전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편 시리아 정부군은 공동의 적인 터키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쿠르드 민병대가 코바니와 자지라 지역에서 아프린으로 지원군을 보낼 수 있도록 간접 지원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 입장에서는 터키와 터키 연계 반군, 쿠르드 세력들이 서로 소모전을 벌이는 사이 더 많은 시리아 영토를 손에 넣으려는 전략이다.

○ 에르도안 대통령의 일타쌍피

최근 성과가 지지부진하지만 터키 내부에서는 여전히 아프린 군사작전을 지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는 쿠르드 분리주의에 대한 터키 사회 전반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PKK가 1984년 게릴라식 공격으로 무장투쟁을 시작하면서 터키는 30여 년간 몸살을 앓았다. 터키 정부가 분리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했지만 지금까지 양측의 충돌로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대미 관계가 껄끄러운 상황에서 아프린 군사작전 개시로 내부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터키 조사기관 마크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YPG와 PKK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90%에 달했다.

반미감정과 애국주의가 고취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도 오르고 있다. 소네르 차압타이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아프린 군사작전은 내년 대선을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절묘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뷜렌트 에제비트 전 터키 총리가 1974년 저조한 지지율로 고전하다 키프로스 침공으로 다음 총선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선거 국면에서 승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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