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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제도 신부 “北주민 의료-나라걱정 많으셨던 추기경님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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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제도 신부 “北주민 의료-나라걱정 많으셨던 추기경님 그리워요”

이진구 기자 입력 2018-02-10 03:00수정 2018-02-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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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김수환 추기경 9주기 감회 밝히는 美출신 함제도 신부
함제도 신부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늘 그립고, 늘 보고 싶고, 생각나는 분”이라고 말했다. 함 신부는 “추기경께서 선종하셨을 때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라고 하셨는데 그 마음을 많이 잃고 사는 것 같다”며 “정말로 추기경의 가르침을 생각한다면 서로 희생하고,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9주기 추모미사는 11일 오후 2시 경기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경당에서 열린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음…, 뭐랄까…. 아주 많이 그리운 분이죠. 9주기라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네요.”

16일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한 지 9주기 되는 날. 7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메리놀외방전교회에서 만난 함제도(제라드 E 해먼드·84·사진) 신부는 김 추기경을 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메리놀외방전교회는 1911년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가톨릭 외방전교회. 함 신부는 1960년 사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선교 및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 및 의약품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김 추기경과는 1968년 국내 한 강연에서 처음 만난 이후 약 40년간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오래전입니다만 처음 추기경을 만났을 때 느낌이 어떠셨는지요.

“뭐랄까…, 아주 편안하고 푸근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인상도 좋으시고…. 분명히 처음 뵈었는데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느낌? 그때가 1968년인데 추기경 되시기 한 해 전이었죠. 서울대주교이실 때 한 강연에서 뵈었는데 그때는 그냥 인사만 드렸지요. 그게 시작이었죠.”

(김 추기경은 1969년 4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메리놀전교회와 함 신부님이 북한 주민을 위한 사업을 많이 하는데 추기경께서도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1989년인가 제가 메리놀전교회 한국지부장일 때였는데, 추기경님을 찾아뵙고 ‘얼마 있다가 북한에 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추기경께서 북한 주민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으셨어요. 당신께서도 굉장히 가고 싶어 하셨고, 제가 그 말씀을 드렸더니 ‘메리놀전교회가 할 일’이라고 하시면서 아주 기뻐하셨어요. 그 뒤로도 몇 번 뵐 때마다 북한 얘기를 했는데 1995년 진짜 북한에 가게 됐을 때 인사를 드리러 갔죠. 그랬더니 ‘진짜 가느냐?’면서 당신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차비나 하라’고 하시면서 봉투를 주시는 거예요. 돌아와서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5000달러나 됐거든요. 1995년에 5000달러면 엄청나게 큰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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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그렇게 큰돈을 갖고 계시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추기경께서 평상시 그렇게 큰돈을 갖고 계실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달러로…. 여쭤 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저희 전교회와 제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사업에 관심이 많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걸 아시니까 아마도 미리미리 조금씩 준비해두신 것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북한에 갈 때가 오면 보태주시려고요. 마음 씀씀이가 그런 분이셨어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한다. 김 추기경은 1975년부터 겸임을 했고 정진석 추기경도 1998년부터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추기경에게 평양은 자신의 사목 구역이기도 했다. 함 신부는 2007년부터 평양교구장 고문을 맡고 있다.)

―추기경께서 북한에 많이 가보고 싶어 하셨다는데요.

“네, 맞아요. 정말 가보고 싶어 하셨어요. ‘나도 기회가 있으면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하시고. 실제로 방북 신청도 하신 걸로 알아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북한이 돈을 요구해서…. 아마 10만 달러쯤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고요.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추기경께서 가시면 북한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아요. 결국 못 가셨는데 굉장히 아쉬워하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희들이 북한 의료지원 사업을 하는 것을 많이 지지하고 지원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북한을 50번 넘게 다녀왔는데 늘 가기 전, 다녀온 후에 꼭 찾아뵙고 북한 상황과 지원 활동을 말씀드렸어요. 그때마다 그렇게 좋아하셨죠.”

―사무실에 추기경 사진이 많습니다.

“제가 가져다 놓았어요. 늘 생각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분인데…. 물론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님 사진도 있지요. 김 추기경께서 늘 당신을 ‘바보’라고 하신 게 기억이 나요. 스스로를 가장 낮게 낮추신 거죠. 그리고 늘 ‘내가 잘못했다’고 하셨어요. 추기경께서는 늘 누구와도 함께하려고 하셨어요. 무척 바쁘실 텐데도 늘 찾아뵈면 ‘좀 더 있다 가라, 여기 앉아라’ 하시면서 얘기하려고 하셨고요. 그리고 ‘우리’ ‘함께’라는 말을 늘 기억하라고 하셨어요.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우리 아버지, 우리나라, 우리 부모님, 우리 민족, 우리 신부님 등등….”

―추기경께서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을 많이 하셨는데, 혹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난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추기경께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셨어요.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운동 하는 분들을 많이 돕고 군부정권에 쓴소리도 많이 했지만 사람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가셔서 직접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고요. 자비하신 마음으로 간 것이겠죠. 그게 추기경의 마음이에요.”

―추기경께서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셨을 당시만 해도 대단히 보수적이라 내부 반발도 있었다던데요.

“서울 사람이 아니니까…. 그때는 아주 옛날이라 그런 생각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추기경께서 부임하셨을 때 참석해서 인사만 하고 다 나가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추기경께서 오히려 젊은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신 것 같아요.”

(김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서울대교구장 부임 이후 10년에 대해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원로 신부님들이 교회 민주화운동을 이해해주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신 것이다. 그분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데다 때로는 형님 같은 신부님도 계셨다’고 회고한 바 있다.)

―추기경께서 많이 힘들어하신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나라 걱정을 하시느라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가요?) 네. 입으로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손을 잡으면 느낄 수 있었어요. 추기경은 남의 이름을 입 밖에 내시면서 비난하고 그러는 분이 아니에요. 당연히 정치 얘기도 직접 하시진 않았어요. 하지만 느낄 수 있었어요. 민주화운동 하며 학생들 지켜주시면서…. 굉장히 염려를 많이 하셨어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추기경 말씀을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정말로 추기경님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희생하고, 봉사하고, 서로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지요. 나만 생각하는 것은 추기경님의 정신이 절대 아니에요. 추기경께서는 평생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어요. 남과 북, 가난한 자와 부자, 종교와 지역 등등 어떤 것이든 나뉘고 싸우는 것을 싫어하시고 일치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신부님께서 처음 사제품을 받고 한국행을 결심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제가 미국에서 1947년 메리놀 소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 동창으로 장면 박사의 아들인 장익 주교가 같이 있었어요.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대학을 다녔지요. 그분에게 한국에 대해 많이 들었고 그게 인연이 된 것 같아요. 우리 메리놀회 회원 중에 한국에 온 분이 많은데 저도 부제품을 받을 때 한국에 가고 싶다고 지원했어요. 그래서 26세 때인 1960년 한국에 왔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일제강점기 동성상업학교 소신학교 졸업반 때 일화다. 수신(修身) 과목 시험에서 ‘조선 반도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일본 천황의 칙유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란 문제가 나왔을 때 김 추기경은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적어 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교장에게 뺨을 맞았는데, 이 교장은 추후 김 추기경이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떠날 수 있게 추천해줬다. 이 교장이 바로 장면 박사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을 보호하기 위해 뺨을 때리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장면 박사의 누이인 장정온 수녀도 메리놀회 수녀였다.)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 문화가 달라 적응하기 힘든 것은 없으셨나요.

“크게 힘든 것은 없었지만 큰 실수를 한 적은 있죠. 충북 청주에 있을 때였는데 어느 시골집을 밤에 방문했는데 소변이 마려운 거예요. 그래서 밖에 나갔는데 큰 항아리가 여러 개 줄지어 있더라고요. 나중에야 그게 장독대고, 안에 있던 것이 된장이란 걸 알았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아, 한국 사람들은 사람 크기대로 용변기를 마련해 놓고 볼일을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된장 냄새도 처음 맡아보는 거고, 그게 꼭 ‘큰 것’ 같잖아요? 하하하. 미국은 한 군데서 다 해결하는데 한국은 애 어른은 물론이고, 각자 신체 크기별로 용변기가 다르니 와∼ 엄청 위생적이고 문화적인 나라라고 생각했죠.”

―오랜 시간 한국에 계셨는데 정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하하하. 아무래도 외국인이니까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도 개인적인 생각은 있겠지만 신도들에게 말하면 안 돼요. (한국 교회에서는 누구 찍으라는 말도 공공연히 하는데요.) 다들 자기 생각이 있는데…. 좀 신도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데,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제가 북한 갈 때마다 세 가지 얘기를 합니다.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민족끼리 화해해야 한다, 서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전쟁이 나면 얼마나 많이 죽겠어요. 서울에만 1000만 명이 사는데…. 제가 여권이 두 개 있어요. 일반용하고 북한 가기 위해 따로 받는 것하고요. 갈 때마다 정부에 따로 신청해야 해요.”

―우리나라 정부에 신청하는 건가요.

“아니요. 미국 정부에요. 이번 5월에 가는 것 때문에 신청은 했는데 아직 답이 안 오고 있어요.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신청하면 바로 나왔지요. (ㅋㅋㅋ 트럼프 대통령이 안 내주는 건가요?) 하하하하. 지금이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지난번 미국 대선 때는 투표 안 했어요. 원래 매번 부재자 투표를 했는데 지난 미국 대선은…, 에휴∼ 말을 말아야지….”

―미국 생각은 안 나시는지요.

“나는 이제 미국에 친구도 없어요. 동생 둘이 있기는 하지만…. 내 친구는 여기 있어요. 미국에 가면 진짜 외롭죠. 묏자리도 이미 청주에 다 봐뒀어요. 하하하.”
 

▼3월 金추기경 생가 경북 군위에 ‘사랑과 나눔 공원’ 개장▼

11일 용인서 선종 9주기 추모미사


경북 군위군에 조성되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조감도.
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9주기를 맞아 이르면 다음 달에 추기경의 생가가 있는 경북 군위군 용대리 일대에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이 개장한다. 약 3만2000m²의 부지에 들어서는 추기경 기념공원에는 추기경이 어린 시절 살던 옛집, 추모전시관, 추모정원,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잔디광장 등이 조성됐다. 또 생가에 딸린 우물과 옹기를 굽던 옹기굴도 복원됐다.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추기경은 네 살 때 군위군으로 이사해 군위보통학교를 다니며 지금의 대구가톨릭대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약 8년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군위군은 121억 원을 들여 2015년 5월 공원과 청소년수련원 공사를 시작했으며 당초 선종 9주기인 16일 개장을 목표로 했으나 다소 지연된 상태다.

한편 선종 9주기 추모미사는 11일 오후 2시 경기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경당에서 진행된다. 올해 추모미사는 설 연휴와 겹쳐 11일로 앞당겨졌다. 미사는 김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잇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주최하며, 재단 이사장인 손희송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의 주례로 봉헌된다. 미사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수환#함제도 신부#김수환 추기경 9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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