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가 본 개회식… 디지털-아날로그의 매력 환상적 결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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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스펙터클, 일사불란한 매스게임, 호화찬란한 불꽃놀이.

기존 올림픽 개회식에서 봐왔던 이미지는 이런 전형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회식은 이런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신명난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불투명하던 남북 공동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극적으로 성사되었고,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및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매일 아침 눈뜨기가 바쁘게 쏟아지는 극적인 화합의 뉴스가 가슴을 달뜨게 했다. 이번 개회식은 단지 올림픽의 시작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획을 긋는 웅장한 서곡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순백의 링크에 펼쳐진 광활한 무대 위에서 푸르른 상원사 동종이 울리며 시작된 개회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매력이 절묘하게 결합돼 환상적인 아우라를 연출했다.

다섯 명의 어린이가 평화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개회식은 시작됐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분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본래 우리의 성향은 끊임없는 접속과 연결, 배려와 존중이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조화로운 퍼포먼스가 이 평화를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에 반짝임을 더한다. 획일적인 매스게임보다는 풍요로운 스토리텔링을 추구한 본래 의도가 ‘Peace in Motion: 행동하는 평화’라는 테마 안에 조화롭게 녹아들어갔다. 우리는 분단과 단절이 아닌 연결과 소통이라는 화두로 21세기를 이끌어갈 것임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아름다운 개회식이었다.

구슬프게만 들렸던 ‘아리랑’이 푸른색 한반도기와 함께 공동입장을 하는 남북한 선수들의 유쾌하고 구김살 없는 얼굴과 어우러지니, 더없이 환하고 따스한 울림으로 새롭게 단장한 ‘21세기 신(新)아리랑’으로 부활하는 느낌이었다.

한국의 역사와 신화에서 가져온 노래와 이야기들, 비보이와 케이팝을 비롯한 현대의 대중문화, 그리고 최첨단의 그래픽 기술이 삼위일체를 이룬 개회식은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세계인의 가슴에 기억될 것이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우리 옛 노래와 비보이들의 유쾌한 댄스, 그리고 첨단 디지털미디어가 결합되어 웅장한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모습, 국경을 초월해 함께 어우러진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이매진’의 평화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다.

맹렬한 추위가 최대 변수로 꼽혔지만 다행히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누그러져 마치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개회식을 전후로 조금씩 해빙되는 현실과 절묘하게 조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본질은 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추위를 이겨내고, 추위 속에서조차 눈발과 어우러져 겨울과 하나 되는 인간의 열정임을 증언하는 ‘뜨겁고도 차가운 개회식’이기에 더욱 벅찬 감동을 주었다.

부디 한반도에서 시작된 이 평화의 종소리가 우리를 전쟁국가나 위험사회로 바라보는 수많은 지구촌의 이웃에게 ‘우리는 평화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음’을 전해주는 따스한 메시지가 되기를. 부디 남북한이 냉전과 적대라는 ‘헌 집’을 버리고 화합과 평화라는 ‘영원히 새로운 집’을 함께 짓는 역사를 열어나가기를.
#정여울 작가#개회식#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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