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합격자 수 늘려 통과… 필기 최하위 면접점수 올려 채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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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국민-하나銀특혜채용 본격수사

우리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도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 특혜 채용을 위한 ‘VIP 리스트’를 따로 관리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권의 채용비리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 하나은행 측은 “특혜 채용을 위한 게 아니다”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앞서 채용비리 정황이 드러난 우리은행의 이광구 전 행장이 검찰 수사 이전에 자진 사퇴한 것처럼 두 금융회사 수장들의 거취도 흔들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문제를 놓고 기 싸움을 벌였던 금융당국과 두 금융회사 측이 채용비리 의혹을 두고 다시 정면충돌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VIP 리스트 75명 전원 서류 통과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검찰에 제출한 두 은행의 VIP 리스트는 우리은행 채용비리 수사에서 밝혀진 리스트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금감원이 넘긴 보고서에는 특혜 채용된 지원자와 추천인, 청탁자, 청탁자와의 관계 등이 상세하게 담긴 걸로 알고 있다”로 말했다. 이 리스트는 객관적인 채점 결과가 남는 필기시험을 제외한 모든 전형에 활용됐다고 금감원 측은 설명했다.

우선 국민은행 리스트에 올라온 20명은 2015년 공채에서, 하나은행 리스트에 있는 55명은 2016년 공채에서 서류전형을 모두 통과했다. 국민은행 리스트에 ‘사외이사 자녀’로 명시된 지원자는 서류전형에서 공동 840등으로 불합격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서류전형 합격자 수가 870명으로 변경되면서 서류전형의 문턱을 넘었고 결국 최종 합격했다.

하나은행 리스트에 있는 하나카드 전 사장의 지인 자녀는 임원 면접 점수가 4.2점으로 불합격권이었지만 이튿날 4.6점으로 점수가 올라가 최종 합격했다. 필기전형에서 최하위로 합격한 사외이사 지인 역시 면접 점수가 3.8점에서 3.9점으로 조정됐다. 금감원은 하루 간격으로 다시 작성된 면접 결과 서류에서 이 같은 변동 사항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은행의 경우 리스트 명단 중 최종 합격한 6명 전원이, 국민은행은 최종 합격한 3명이 면접 점수 조작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된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 최종 합격자 3명에는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종손녀(누나의 손녀)가 포함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윤 회장의 종손녀 등 3명은 채용비리가 뚜렷했지만 나머지 리스트에 있던 합격자는 채용비리로 단정하기 어려워 검찰에 규명을 맡겼다”고 말했다.

KB금융과 하나금융그룹 측은 채용비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두 회사 관계자는 “조사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면서도 “인사 실무 부서에서 관리를 위해 참고용으로 만든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리스트에 있는 55명 중 6명만 최종 합격한 것을 봐도 특혜 채용이 실제로 이뤄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KB금융은 윤 회장의 종손녀에 대해 “지역 할당(광주) 인재로 채용된 것”이라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 윤종규, 김정태 회장 거취 ‘흔들’

은행들이 이처럼 강력하게 부인하는 이유는 이번 채용비리 의혹이 사실상 지주회사 회장의 거취를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광구 전 행장은 금감원이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기관에 통보한 후 16일 만인 지난해 11월 스스로 물러났다. 이어 관련 임원들도 줄줄이 옷을 벗는 등 내홍을 겪어야 했다.

특히 KB, 하나금융 측은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를 문제 삼은 금융당국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윤종규 회장은 지난해 9월 연임에 성공했고, 김정태 회장은 최근 3연임에 사실상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연임 과정에서 체면을 구긴 금융당국이 채용비리 카드를 통해 설욕을 노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검찰 수사 단계에서 사실 관계가 어느 정도만 드러나도 이들이 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 임원이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에는 임원 자격을 잃는다.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해치는 임원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주주총회에서 해임을 권고할 수도 있다.

채용비리에 대한 사회적 지탄도 거세다. 청년 실업이 역대 최악의 상황인 가운데 ‘배경’으로 손쉽게 은행에 입사하는 모습이 공분을 사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용비리는 단순한 청탁이나 특혜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 질서를 해치는 ‘적폐’로 여겨지고 있다”며 “혐의가 드러날수록 사퇴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강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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