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법원 “사후 20년 지난 피폭 한국인, 배상청구권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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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사망 31명 유족 소송 기각
청구권 소멸 주장 日정부 손 들어줘
해외거주 930명 소송중… 영향 줄듯

일본 법원이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집단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2007년 한반도 거주 피폭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했으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16년부터 입장을 바꿔 “피해자 사후 20년이 지난 경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사카(大阪) 지방재판소는 전날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입고 한국에 돌아갔던 피해자 유족들이 배상금 지급을 요구한 소송을 기각했다. 원고는 1975∼1995년 한국에서 사망한 피폭자 31명의 후손 159명.

기누가와 야스키(絹川泰毅) 재판장은 판결에서 “제소 시 이미 사후 20년이 경과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는 ‘제척기간’이 지났다”며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제척기간을 이유로 피폭자 유족의 청구가 기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1974년 피폭자들에게 건강관리 수당 등을 지원하는 ‘피폭자 원호법’을 제정했지만 대상을 일본 국내 거주자로 제한해 해외에 사는 피폭자들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일본 정부에 그동안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 위법이니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해외 거주 피폭자의 제소가 있으면 배상금 110만 엔(약 108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해 그동안 6000명의 해외 거주자가 배상을 받았다. 이 중에는 사후 20년이 지나 제소한 유족 175명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재판 도중인 2016년부터 ‘제척기간’ 조항을 들며 “피폭자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경우는 배상청구권이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판결은 일본의 오사카 히로시마 나가사키 등 3개 지방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비슷한 소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사 소송을 진행 중인 사람(피폭자 본인과 유족)은 930명, 이 중 피해자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경우는 600명에 이른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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