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성추행 진상규명, 검찰에 퇴로나 우회로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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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 성추행 문제… 국민 충격 가늠키 어려워
법질서 수호해야 할 검찰… 조직 기강과 신뢰에 직결
엄정한 진상 규명 시급해
뼈 깎는 자정해야 하지만 검찰 훼손 빌미 작용은 안 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우리나라의 조직은 쓴맛이 강하다. 오죽하면 ‘조직의 쓴맛(the bitter taste of organization)’이라는 한국적 표현이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에까지 등장했겠는가?

‘조직의 쓴맛’이라는 책이 있다. 조폭들의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용 동화책이다. 할머니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을 가르치며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선생님이 각종 유리병에서 다양한 약을 꺼내 먹이는데, ‘조직의 쓴맛’은 그중 하나다. 이 약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놀리는 아주 나쁜 행동’과 ‘다른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정말 나쁜 행동’을 했을 때만 먹인다. 선생님은 30년 이상 교사 생활을 했고, 해마다 10개씩 벌(罰)을 개발했으니 300개 이상의 벌을 갖고 있다. ‘조직의 쓴맛’은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벌이다.

은퇴자들의 고전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戒老錄)’의 저자 소노 아야코는 자신이 근무한 조직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조직을 사랑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관여하고, 그만둔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며, 남아있는 동료를 귀찮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직 문화가 특별히 강한 곳에서 퇴직한 사람들에게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성찰이다.

검찰은 늘 시끌시끌한 곳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것 같다는 걱정을 들을 때가 있다. 대형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검찰의 근본 구조가 바뀔 수 있는 개혁 논의 와중에 전직 간부의 성추행 의혹이 폭로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검찰 내부에서의 성추행 문제는 조직 기강과 신뢰에 직결된 것이라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법무부는 대검에 제기된 문제 전반을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검찰도 이 문제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여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대검 감찰위원회가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고, 문무일 검찰총장도 대규모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성추행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 회복 조사단’ 단장에는 최선임 여성 검사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이 임명됐다. 조사단은 진상 조사와 제도 개선의 투 트랙으로 활동하되 근절될 때까지 무기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한변협도 여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를 응원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법질서를 수호하고 범죄를 처단하는 직분을 가진 검찰 내부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실이라면, 가장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검찰 내에도 성희롱이 만연하고 2차 피해가 두려워 참고 견딘다는 것”이라며 “성희롱, 성추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문화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밝힌 게 이 같은 국민들의 걱정을 대변한 것이다.

이 문제에는 두 가지 미묘한 포인트가 있다. 우선 드러내서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기 어렵고, 문제가 되면 약자인 여성이 잘못한 것처럼 몰릴 수 있는 ‘성추행 문제’라는 점이다. 또 상하관계에 있는 구성원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검찰의 조직 문화가 조사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직의 성추행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시급한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고 엄정하게 진상을 밝히는 일이다. 책임이 드러난다면 단호한 문책도 있어야 한다.

소노 아야코 여사의 현명한 충고를 무시하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검찰에 다른 퇴로나 우회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감한 자체 개혁의 일환으로 조직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검찰 내부의 뼈를 깎는 자정과 무한한 분발이 요구되는 시기다.

현재 국회와 정부에서 검찰 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이익이 되는 효율적 구조로의 개혁 방안이 도출되기 바란다. 하지만 위장병 환자에게 팔다리를 자르는 외과수술을 할 수는 없다. 이번 성추행 문제가 개혁 논의 과정에서 다른 의도로 이용되거나 검찰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는 빌미로 작용한다면 어떤 검찰 구성원도 승복하지 못할뿐더러 국민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검찰 내부 성추행 문제#조직의 쓴맛#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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