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복도통신’이 너무 안 맞아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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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지난해 12월 말부터 지난달까지 신문 인사·동정란은 붐볐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정기인사가 이맘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원하던 자리로 갈 수 있을까’ ‘이번에는 승진할 수 있을까’ 공무원들은 한껏 긴장했다가 결과가 발표되자 다시 차분해졌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렇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왜 안 그러겠는가, 인사 불만이 적지 않다. 인사란 것은 소수의 ‘승자’가 있으면 한숨짓는 ‘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위직 공무원이면 당장 내일 나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인사가 무너졌다”는 말을 공직사회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무너진 인사’를 잘 표현하는 것은 “복도통신이 너무 안 맞는데”라는 말이다.

‘복도통신’이란 이 부서, 저 부서가 있는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가 나기 전 나누는 하마평을 말한다. “○○○ 씨가 꾸준히 그쪽 통으로 경력을 쌓았으니 차기 국장감 아니겠어” “△△△ 씨는 난제가 가장 많은 부서에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으니 승진하겠지” 운운하는 식이다. 선후배라도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복도통신이 의외로 잘 맞는다는 말은 돌려 말하면 ‘그 자리에 갈 만한 사람이 간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복도통신과 인사 결과가 너무 동떨어졌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공무원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헌법에서 독립성을 보장하는 공무원이라 해도 누가 정권을 잡느냐, 다음 지방자치단체장은 누구냐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수년 전 상사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자신이 추진한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고 나서는 일은 다반사다. 당시에는 혁신적이라고 입을 모았던 정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던 과(課)가 한순간에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다. 윗사람의 무리한 지시에 “현행 법령상 추진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승진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다들 안다.

최근 인사 결과 1급에서 3급 직책으로 좌천되거나 조직을 떠나게 된 공무원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 달 뒤 저희 자리에 누가 임명되는지 보십시오.” “수백억 원 규모의 정부 용역조사를 어떤 단체, 어느 교수가 맡게 될까요.” “정권이 바뀌면, 단체장이 바뀌면 이 악순환은 또 반복됩니다.”

리더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고 성실히 수행할 사람에게 중임을 맡기는 것은 옳다. 그러나 도를 벗어나 ‘구미에 맞는’ 사람들로 채우다 보면 탈이 날 확률이 높다. 경력 분야가 아닌 사람을 ‘깜짝 인사’ 하면 결과가 깜짝 놀랄 만큼 나쁠 수도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실력 미달의 인물이 리더가 되면 직원들이 시달린다.

인사는 공무원 후배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란 점에서 특히 더 중요하다. 어떤 선배가 어떤 자리에 어떤 이유로 갔는지 ‘아랫사람들’은 보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합당한 자리에 갔다면 ‘우리 조직은 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이전 정부에서 좌천된 이야기에 많은 국민은 분노했다. “그 사람이 아직도 있나요”라는 대통령의 반문은 직업공무원 제도를 흔들었다. 혹시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2의 노태강’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지 리더라면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복도통신#그 자리에 갈 만한 사람이 간다#제2의 노태강#인사가 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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