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검사들 “터질게 터졌다”… 검찰내 성폭력 전면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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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진 여성 1호 검사장, 조사 지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성추행)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후 제가 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제가 혼자 목소리를 냈을 때 왜 조직이 귀 기울일 수 없었는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안태근 전 검사장(52·사법연수원 20기)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45·33기)는 31일 “이 사건의 본질은 제가 어떤 추행을 당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며 변호인을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폭력 피해자와 성폭력 범죄에 대한 편견을 깨기 시작하면 좋겠다는 서 검사는 “제 사건에서 언급된 분들에 대한 지나친 공격, 인격적 공격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폭로 이후 검찰 안팎에서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관심 가져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 “쉬쉬했을 뿐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일선 여검사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그간 알게 모르게 숨겨진 성추행이나, 성추행과 친밀감의 표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었던 일들이 많았는데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검사들은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면 검찰 조직에서 부적응자로 취급될까봐 주저했다”고 입을 모았다.

성추행 등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와줄 거라고 믿었던 여성 부장이 오히려 “참아라”라고 했을 때가 가장 섭섭했다는 여검사의 반응도 있었다. 성폭력을 당한 여검사가 해당 청의 수석검사를 통해 정식으로 문제를 삼기가 부담될 때 선배 여검사에게 고민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참으라고 해 배신감이 컸다는 것이다.

서 검사의 폭로 글에는 안 전 검사장 외에 과거 자신이 남성 선후배 검사로부터 당한 성추행 및 성희롱 사례가 다수 담겨 있다.

어떤 선배 검사는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줄 테니 나랑 자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탬버린을 두드렸는데 함께 놀던 부장검사가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는 것이다.

한 전직 여검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간부가 퇴근 후 관사에서 혼자 지내기 쓸쓸하다며 관기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경험을 전했다. 또 “간부는 자신의 ○○ 맛을 보면 여자들이 모두 정신을 못 차린다고 그 부인은 본인이 지방 발령을 받으면 우울증에 걸린다고…뭐 이런 잡소리들을 늘어놓았다”는 글을 올렸다.

○ 여성 1호 검사장, 진상조사단 꾸려

대검찰청은 이날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을 위한 조사단’을 발족하기로 했다. 조사단장에는 첫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56·19기)을 즉각 임명했다. 주영환 대검 대변인은 오전 긴급 브리핑을 갖고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어느 한 성이 다른 성에 의해 억압되고, 참고 지내야 하는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조사단을 발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서 검사 사건을 포함한 검찰 내에서 벌어진 성추행 의혹 전반을 조사한 뒤 피해 회복과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한다. 단장 외에 부장검사급 부단장, 평검사 4명, 수사관 5명 등 최소 11명 규모로 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조사단은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의혹을 조사한 뒤 인사상 불이익이 있었다는 서 검사의 주장도 확인할 예정이다.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별도로 따지지 않기로 했다. 조 지검장은 통화에서 “조직 내에서 남녀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근무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주저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조 지검장 등 수도권 지검장들을 대거 호출해 “일체의 의혹도 남김없이 진상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와 대검 검찰개혁위원회는 이날 각각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 발족과, 성폭력 피해사실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권고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권고안을 수용했다. 조 지검장은 “서 검사 사건을 먼저 조사한 뒤 전수조사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검사#성추행#검찰#조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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