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대북 코피 터뜨리기 작전땐 한국 위험” 정면 반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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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빅터 차 주한대사 지명 철회]트럼프와 어떤 이견 있었기에…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가 지명이 취소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지명 공식 발표를 앞두고 진행된 백악관 면접 과정에서 대북 무력 사용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지만 회의적인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워싱턴의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차 석좌는 ‘백악관 면접 때 솔직히 대사 내정자에게 이런 걸(무력 사용에 대해) 묻는 게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차 석좌의 백악관 면접은 두세 차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하순 사실상의 최종 인터뷰가 있었는데 이때도 ‘북한과의 대화 옵션이 모두 소진됐을 경우 군사적 옵션의 정당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차 석좌는 여전히 ‘대북 무력 사용 옵션’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크리스마스(12월 25일) 이후 백악관과의 연락이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로 ‘대북 강경파’인 차 석좌보다 더 강경한 인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이것이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 절차가 끝난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지명 철회’란 한미 관계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는 해석이다.


○ “빅터 차의 강경과 백악관의 강경 차이가 컸다”

차 석좌는 자신의 낙마 소식이 보도된 직후인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제기되는 예방적 대북 선제타격 방안인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에 대해 지나치게 위험하다며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재차 밝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만 각각 23만 명과 9만 명의 미국인이 있다. 북한의 폭탄이 비처럼 쏟아질 때 이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희망보다 논리가 우선시돼야 할 시점이 있다. 해당 정책(예방적 대북 선제타격 방안)은 지나치게 무모하다”고 거듭 비판했다. 그 선제타격이 ‘북한의 보복을 억제하는 선’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선제타격을 실시한다면) 대통령은 피츠버그나 신시내티(각각 인구 약 30만 명)에 준하는 미국의 중형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반도 전쟁이 미국 본토 전쟁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주한 미국인 수(약 23만 명)가 웬만한 미국 도시의 인구수와 맞먹는다는 점을 들며 그 위험성을 강조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도 “트럼프 대통령이 ‘빅터 차도 대북 강경파’라는 국무부의 추천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했으나 ‘빅터 차의 대북 강경’과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대북 강경’의 차이가 너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존 햄리 CSIS 소장도 “차 석좌는 ‘북한의 코피를 터뜨리자’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안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국무부 의견을 묵살한 백악관, 워싱턴 긴장감 고조

워싱턴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에 ‘무력 옵션을 골몰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백악관이) 차 석좌가 북한과 문재인 정부를 상대할 만한 ‘강한 심지(strong mind)’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톰 라이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세상에 이럴 수가(Holy smokes)”라며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예방적 선제타격에 대해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차 석좌 낙마를 보니) 내가 틀렸다”고 적었다. 또 “트럼프는 (선제타격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극도로 우려스럽다”고 했다.

수미 테리 CSIS 수석연구원도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파(hard-liner)’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다. 나도 강경파라고 평가받지만 군사 옵션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 수위는 이전 행정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위협을 차 석좌가 반대한 것도 지명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 석좌를 대사 내정자로 발탁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갈등 관계에 있는 백악관 참모들은 진작부터 차 석좌의 임명에 반대해 왔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로 통한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빅터 차#대북#주한대사#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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