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150년만에 귀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佛 경매 나와 업체 기부로 돌아와

150여 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죽책이란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등을 책봉할 때 그에 관한 글을 대나무 쪽에 새겨서 수여하는 문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150여 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죽책이란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등을 책봉할 때 그에 관한 글을 대나무 쪽에 새겨서 수여하는 문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군에게 약탈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조선 왕실의 문화재가 150여 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했다. 주인공은 1819년 제작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 冊封 竹冊)’.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월 3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효명세자빈 죽책이 지난해 6월 프랑스의 한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한 후 협상을 거쳐 올 1월 20일 국내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이날 처음 공개한 죽책은 1819년(순조 19년) 효명세자빈(1808∼1890)을 책봉할 때 수여한 대나무로 만든 책이다. 크기는 높이 25cm, 너비 17.5cm. 6장으로 구성된 죽책을 모두 펼치면 102cm에 이른다. 조선 왕실에선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 세자, 세자빈을 책봉할 때 옥이나 대나무로 제작한 어책(御冊)을 만들었다.

효명세자빈은 후대에 고종을 수렴청정한 ‘조대비(趙大妃)’로 잘 알려져 있다.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로, 남편인 효명세자(1809∼1830)는 요절했지만 아들 환이 조선 제24대 왕 헌종에 올랐다.

학계에서는 그간 효명세자빈 죽책이 병인양요 당시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1857년 강화도 외규장각의 물품 목록인 ‘정사외규장각형지안(丁巳外奎章閣形止案)’에는 올라 있었지만 당시 프랑스군이 남긴 약탈 문화재 목록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프랑스의 한 개인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으며 죽책은 다시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장자는 파리에서 보석상을 운영한 할아버지 쥘 그룸바흐로부터 상속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재단은 소장자와의 협의와 국제법 검토를 거쳐 약 2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구매 비용은 외국계 온라인 게임 회사인 ‘라이엇게임즈’가 모두 부담했다.

재단 관계자는 “효명세자빈의 죽책은 크기, 재질, 죽책문의 서풍과 인각(印刻) 상태가 매우 뛰어난 조선 왕실 공예품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왕세자빈#병인양요#효명세자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