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박민우]‘집’ 나갔던 커피가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케냐AA’ 커피로 유명한 케냐에는 2016년에서야 처음으로 수도 나이로비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케냐AA’ 커피로 유명한 케냐에는 2016년에서야 처음으로 수도 나이로비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이집트에 온 뒤 커피를 마시는 일이 부쩍 줄었다. 나른한 오후를 버티기 위해 하루 한 잔은 꼭 마셔 왔지만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잔 정도 마실까. 일단 주변에서 대중적인 커피전문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스타벅스 매장은 16개에 불과하다.

커피전문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이 커피를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집트에 처음 커피가 전해진 건 15세기 중반.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문을 연 시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다.

커피는 어디서 어떻게 중동으로 전해졌을까. 커피의 원산지는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알려져 왔다. 에티오피아에는 커피에 관한 오래된 전설이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염소를 돌보는 칼디라는 젊은 목동이 커피를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다. 어느 날 칼디는 염소들이 한 식물의 잎사귀와 빨간 열매를 먹고는 잠도 자지 않고 천방지축 뛰노는 걸 목격했다.

칼디는 이 열매의 효능을 주변 수도원에 알렸는데 수도사들은 “악마의 열매”라며 화롯불에 태워버렸다. 그러자 열매 안의 커피콩이 구워지면서 향긋한 커피 냄새가 퍼졌고, 그 유혹에 빠져서 커피를 볶아 먹었다고 한다. 칼디가 살던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 ‘카파(Kaffa)’ 지역이 커피의 어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7세기경 홍해를 건넜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번성한 이슬람교는 커피가 중동 전역에 전파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 무슬림이 매개자가 됐다. 양모(羊毛·아랍어로 ‘수프’)로 만든 망토를 둘러 수피라 불린 이들은 금욕주의자였다. 수피 무슬림은 잠들지 않는 고행을 자처했는데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식욕을 떨어뜨리고 잠을 쫓아냈다. 이들은 커피를 잔뜩 마시고 한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빙글빙글 돌며 깊은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수피 무슬림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향하는 순례길에 커피를 전파했다. 사람들은 금세 커피의 맛과 효능에 사로잡혔다. 16세기 초에는 사우디 메카와 메디나, 이집트 카이로의 이슬람 사원 주변에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이 1517년 예멘을 점령하면서 커피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까지 전해졌다. 커피는 오스만 제국에서 ‘카흐베’라 불렸고, 일반 시민들은 커피하우스인 ‘카흐베하네’에서 커피를 즐겼다.

당시 예멘에서 생산된 커피는 모카항을 통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운반됐다. 이곳에서 커피는 유럽으로 수출됐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1645년 베네치아에 문을 열었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아라비아커피가 17세기가 돼서야 아라비아반도를 떠난 셈이다. 이후 서구 열강이 앞다퉈 커피 재배에 뛰어들면서 커피는 전 세계로 퍼졌다.

최근 에티오피아의 이웃나라 케냐를 방문했을 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케냐AA’ 커피로 유명한 케냐는 오랜 기간 커피를 재배하고 수출해온 나라다. 하지만 케냐에는 스타벅스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커피하우스가 없었다. 한국 청년 사업가 황동민 씨가 2016년에서야 수도 나이로비에 처음으로 커피전문점을 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황 씨는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케냐 사람들이 이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아프리카의 커피 소비 시장은 급격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이 모여드는 커피하우스는 개혁적인 공간이다. 당대 지성들은 이곳에서 기존 제도에 대한 저항의식을 키웠고, 활발한 토론 끝에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내놨다.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는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싹텄고, 프랑스의 부르주아도 이곳에서 혁명을 시작했다. 전 세계를 매혹시키고 본고장으로 돌아온 커피하우스는 아프리카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케냐 aa 커피#나이로비 커피전문점#에티오피아의 커피#커피하우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