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안에 있는 ‘황당 비상구’… 환자들은 있는지도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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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병원 화재 참사]세종병원 곳곳 ‘방재수칙 무시’

‘출입금지’ 붙어있는 수술실 안에 비상구 세종병원 3층 비상구 표지가 수술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문 위에 붙어 있다. 3층 환자가 비상구로 탈출하려면 이 수술실 문을 지나야 하지만 평소 접근이 엄격히 제한됐다(위쪽 사진). 이곳을 지나 수술실을 가로질러야만 비상구에 다다를 수 있다(아래쪽 사진).
‘출입금지’ 붙어있는 수술실 안에 비상구 세종병원 3층 비상구 표지가 수술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문 위에 붙어 있다. 3층 환자가 비상구로 탈출하려면 이 수술실 문을 지나야 하지만 평소 접근이 엄격히 제한됐다(위쪽 사진). 이곳을 지나 수술실을 가로질러야만 비상구에 다다를 수 있다(아래쪽 사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는 1층 탕비실 천장에 설치된 배선이 합선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배선을 덮는 스티로폼 등이 타면서 유독가스가 섞인 연기가 중앙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로 확산된 것이다. 불길과 유독가스를 막아줄 방화문은 1층에 없었고 2층 역시 화재 당시 열린 상태로 보인다. 방화문만 제대로 관리됐다면 환자 상당수가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걸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제 역할 못한 방화문

28일 2층 생존자들에 따르면 일부 환자는 2층 방화문을 열고 중앙계단을 통해 1층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문을 열고 한 층만 내려가면 바로 대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대피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보다 빨리 1층에서 올라온 유독가스 탓이다. 건축법상 건물 내부에서 계단으로 통하는 출입구에는 반드시 방화문을 설치해야 한다. 실제 설계도면에는 1층에 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양시 관계자는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됐다면 건축법 위반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2∼5층 방화문의 정상 작동 여부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방화문은 문을 활짝 열어도 자동으로 닫혀야 한다. 병원 관계자는 “모든 방화문에 자동개폐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환자와 직원들은 2층 방화문을 활짝 열면 저절로 닫히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화재 1시간 전 2층에서 근무한 직원 A 씨(여)는 “원래 자동으로 닫히는 문인데 끝까지 꽉 밀면 안 닫히고 계속 열린 상태가 된다. 불난 날 새벽에도 일 때문에 문을 5분 정도 열어놓았다”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2층 문을 열자 복도 벽은 이미 시커먼 그을음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방화문 안쪽 천장과 복도 벽지가 폭 1m가량 불에 탔다. 방화문이 일정 시간 열려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2층 방화문이 평소에도 열려 있었는지, 대피 과정에서 열린 상태로 방치됐는지 확인 중이다.

경찰은 중앙계단과 함께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 2층을 잇는 구름다리식 연결통로를 유독가스 확산 경로로 지목했다. 이 연결통로는 발화가 시작된 1층 응급실 바로 위에 있다. 주로 화장실에 설치되는 1∼5층 배관의 틈새와 승강기 공간도 확산 경로의 하나로 분석했다.

○ 제한구역에 갇힌 비상구

3층에서는 불이 나면 생명로(生命路)가 돼야 할 비상구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 지역에 설치돼 있었다. 의료진만 드나들 수 있는 수술실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구조다. 3층 비상구로 가려면 ‘중앙수술실’ ‘수술 중’ 간판이 걸린 문을 열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수술실 문을 또 열어야 한다. 화재 당시 이 비상구로 탈출한 환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접근이 제한된 수술실 안에 있던 비상구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은 병원의 각종 불법 건축물이 환자들의 이동통로를 좁혀 희생자가 증가했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불이 난 응급실과 직접 이어지는 1층 통로는 불법 증축돼 진입로를 좁혔다. 병원은 2008년부터 1층 통로를 비롯해 12곳의 불법 증축으로 공간을 넓혀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아왔다. 밀양시는 2011년부터 각종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라며 이행강제금을 부과했지만 병원은 6년 동안 3000여만 원을 내는 데 그쳤다.

병원 측이 병실을 과밀 운영한 정황도 나타났다. 일부 병실은 병상 간격이 65cm에 불과할 정도로 좁았다. 병원은 보건소에 병상 수를 95개로 신고했지만 요양병원 환자 16명을 넘겨받아 병원 5층에 입원시키면서 사실상 99명의 환자를 관리했다. 그러면서 의료 인력을 따로 늘리지는 않아 5층에선 요양관리사 1명이 환자 16명을 책임져야 했다.

일부 환자가 손이 병상에 묶여 있어 구조 활동에 지장을 빚었다는 의혹도 사실인 것으로 조사됐다. 밀양소방서 구조대 관계자는 “3층에 올라갔더니 18명 이상의 한쪽 손이 결박돼 있었다. 부드러운 끈과 로프 등으로 한 손이 묶여 병상에 고정돼 있었고 다른 한쪽 팔에는 링거를 꽂고 있었다. 한 명을 푸는 데 30초에서 1분 정도 걸렸다”라고 말했다. 화재 당시 비상용 발전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세종병원 비상발전기는 수동 작동을 해야 하는데 작동 흔적이 없어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장을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불이 난 1층 응급실 천장은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주차장 천장과 구조가 비슷하다. 초기 화재 때 연기와 유독가스가 많이 나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밀양=조동주 djc@donga.com·사공성근·유주은 기자
#밀양#화재#비상구#병원#출입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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