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뒤에도 방화문 열린채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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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병원 화재 참사]수도권 중소병원 3곳 둘러보니

28일 서울의 한 병원 방화문 주변에 전기배선을 위해 뚫어놓은 구멍(실선 안)을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가리키고 
있다. 불이 나면 방화문이 닫혀 있어도 이런 구멍이 연기와 화염의 통로가 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8일 서울의 한 병원 방화문 주변에 전기배선을 위해 뚫어놓은 구멍(실선 안)을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가리키고 있다. 불이 나면 방화문이 닫혀 있어도 이런 구멍이 연기와 화염의 통로가 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8일 서울 도심의 한 병원. 본관 1층에 들어서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대형 여닫이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바닥에는 소화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도록 일부러 소화기를 받쳐 놓은 것이다. 복도를 오가던 의료진 중 누구도 소화기를 치우려 하지 않았다. 현장을 둘러본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이 문은 불이 났을 때 유독가스 확산을 막는 방화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닫아 놓지 않으면 밀양 같은 참사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낡은 방화문은 닫아 놓아도 제 구실을 하기 어렵다. 이 병원 방화문은 곳곳에 크고 작은 틈이 있었다. 큰 것은 폭이 2cm가량 됐다. 방화문에 전기 등 각종 설비를 추가로 설치하면서 생긴 구멍도 많았다. 유독가스는 이런 작은 틈이나 구멍을 비집고 들어간다. 박 교수는 “방화문 틈이나 구멍도 소방점검 때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긴급 점검한 수도권 중소 규모 병원 3곳의 상황은 참사가 난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병원들도 모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일반병원의 경우 4층 이상, 각 층의 바닥 면적이 1000m² 이상일 때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해당 병원들은 면적 기준에 미달한 곳이다.

의무가 아니다 보니 사고를 겪어도 방화설비 보완에 소극적이다. 2014년 화재가 발생해 환자들이 급히 대피하는 소동을 겪은 서울의 한 병원은 여전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다. 병동 복도에는 제조일자가 ‘2003년 4월’로 표시된 소화기가 있었다. 소방점검 날짜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입원 중인 이 병원 환자는 “병원 관계자가 내부에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걸 알려준 뒤 솔직히 무서운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중소병원의 건물 구조도 문제다. 보통 화재 때 가장 위험한 건 중환자다. 대피에 시간이 걸려서다. 이를 감안하면 가급적 낮은 층에 있는 게 낫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병원이 3층 이상에 중환자실을 운영했다. 경기도 내 군(郡) 지역에 있는 한 병원도 4층 건물 중 3층에 중환자실이 있었다. 이곳은 1980년대 초반 지어진 150병상 안팎의 병원이다. 환자 대부분은 노인이다. 입원 중인 60대 김모 씨는 “불이 나면 중환자나 노인은 다 죽을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한국보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은 비슷한 사고를 겪은 뒤 대책을 강화했다. 2013년 후쿠오카(福岡)의 한 병원에서 일어난 화재가 대표적이다. 당시 10명이 숨졌는데 모두 거동이 불편한 70대 이상 환자였다. 유독가스를 막아 줄 방화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소방법령 개정에 나서 2016년부터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연면적 3000∼6000m² 이상에서 모든 병원으로 확대됐다. 병상이 4개 이상이고 ‘피난할 때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입원하는 모든 병원’은 면적에 상관없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했다. 또 건축법령을 고쳐 연 1회 의무적으로 방화셔터나 방화문을 점검하게 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조유라 기자 / 도쿄=장원재 특파원
#방화문#밀양#화재#요양병원#소방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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