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법원장 “원세훈 재판문서 조사 필요” 언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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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장 전격 교체 후폭풍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소영 법원행정처장(54·사법연수원 19기)의 교체 이유를 대법관들에게 설명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항소심 재판 관련 의혹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김 처장의 교체를 발표하기 전 가진 대법관 회의에서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법원행정처가 원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 직후 작성한 문서 내용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원 전 원장의 상고심 재판(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했던 김 처장이 사법행정을 계속 담당하는 게 향후 (3차) 추가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원 전 원장이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을 동원해 댓글 등으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경위, 즉 대법원의 내밀한 재판 과정도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향후 조사 방식과 범위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김 대법원장의 대법관회의 발언을 감안할 때 김 처장의 교체는 고강도 ‘3차 조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 처장은 앞서 추가조사위 조사 과정에서 행정처 관계자들이 사용했던 PC 제공과 당사자 동의 없는 PC 조사를 반대한 바 있다. 한 고위 법관은 “김 처장을 다음 달 1일자로 교체하면서 25일에 서둘러 인사 발표를 한 것은 행정처 내부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관들은 추가조사위의 원 전 원장 재판 관련 문건 공개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원 전 원장의 대법원 상고심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 아닌데도 추가조사위가 무책임한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원 전 원장 사건은 소부(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재판부)에서 만장일치로 합의가 됐지만 ‘사안이 중대하므로 전체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와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가조사위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 결과 발표와 김 처장의 전격적인 교체 이후 법원행정처 내부는 동요가 더 심각해지는 분위기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들 사이에서는 “대법원장에게 집단으로 겸임해제 건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법원행정처에는 총 35명의 법관이 일선법원에 소속을 둔 채 겸임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다. 겸임발령이 해제되면 원소속 법원으로 돌아가 재판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최근 법원행정처 소속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심의관 8명 중 2명은 아예 사의를 표명했다. 두 사람은 모두 사법연수원 동기들 가운데 최선두 그룹으로 꼽히는 엘리트 판사다. 한 법원행정처 간부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적폐’로 몰리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임기 만료를 앞두고 법원행정처장이 재판부로 복귀하는 것은 오랜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김 처장의 교체가 ‘문책성 경질’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김 처장 교체가 추가조사위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추가조사 결과 발표를 놓고 대법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법원 안팎의 시각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전혀 그런 의견 차이나 갈등이 없다”고 강조했다.

권오혁 hyuk@donga.com·전주영 기자
#원세훈#재판문서#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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