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수 박사 “日의 과학 경쟁력 비결은… 과학자들이 창피함을 아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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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이화학연구소 연구원 김유수 박사, 대덕단지 방문해 과학자들과 토론
“자신의 연구에 대한 끝없는 성찰이 노벨상 수상자 많이 배출하는 이유”

김유수 박사는 ‘리켄의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강연에서 “연구 자율성 확보 등 연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김유수 박사는 ‘리켄의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강연에서 “연구 자율성 확보 등 연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일본이 높은 과학 경쟁력을 유지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이유는 과학자들이 ‘창피함’을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초청으로 22, 23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방문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리켄) 종신연구원 김유수 박사의 진단이다.

김 박사는 방문 기간 ETRI에서 강연하고 특구 내 과학자들과 기초과학 연구문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그는 ‘리켄의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강연에서 “선수들(과학자들)끼리는 어떤 연구가 창피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잘 안다. 창피함이라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 성찰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연구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1990년대 중반 리켄에 입사해 일본인을 제외한 아시아인 가운데 유일하게 리켄의 종신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리켄은 1917년 설립돼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일본 유일의 기초과학 종합연구소다. 2001년 화학상을 수상한 노요리 료지(野依良治)를 비롯해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과학의 자존심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충분한 연구비와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는 리켄을 ‘연구자의 낙원’이라고 부른다.

이런 연구 환경은 연구소와 연구원 스스로 확보해 왔다. 김 박사는 “리켄은 주임 권한이 절대적인 ‘주임연구원 제도’를 마련해 연구 자율성을 높였다. 주임연구실은 7년에 한 번 평가를 받는데 연구의 가치 등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다. 논문 편수같이 데이터를 요구하는 정량적인 평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리켄의 일반 연구원들도 목소리가 크다. 이들이 주축이 된 평연구원회의는 조직도에 없지만 운영진에 막강한 견제력을 행사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리켄 100년 역사 속의 ‘소통’과 ‘연대’ 문화가 가능하게 했다. 김 박사는 “리켄의 과학자들은 성별과 나이, 직책을 가리지 않고 매주 금요일 저녁 파티를 즐기면서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이런 소통을 통해 목소리를 합쳐 연대를 이뤄 연구 자율성을 높이고 스스로 위상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과학자들에게 연구 성과를 재촉하지 않는 편이다. 리켄의 모리타 고스케(森田浩介) 박사가 12년 연구 끝에 113호 원소를 발견할 때 제안서 준비에만 10년이 걸렸지만 결코 채근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김 박사가 강연 중반에 “리켄의 과학자들도 요즘에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소개하자 청중석의 과학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수주에 시달리는 한국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김 박사는 “리켄 과학자들은 연구 수행에 필요한 연구비를 충분히 지원받는다. 프로젝트는 연구 결과물에 구미가 당긴 기업들의 주문에 의해 이뤄진다. 과학자에게 의무는 결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리켄도 이제 과학자의 호기심만으로 연구 주제를 정할 수 없는 시대다. 인간의 미래 생존과 이를 위한 문제 해결이 사회적 요구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지난해 일본 정부는 과학자들이 연구 제안서를 낼 때 2050년 지구촌 및 일본 사회를 거시적 차원에서 미리 그려볼 것을 권고했다. 앞으로 기초과학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쉽게 응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기초과학의 저력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김 박사는 “한국 과학계는 융합 연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미국의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은 융합 연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경계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연구와 분석이 선행돼야 융합 연구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관점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국내 과학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 과학자는 “한 가지 연구를 지속할 수 없고 잦은 평가와 프로젝트 수주 압력이 심한 한국에서 노벨상은 요원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한 과학자는 “환경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자신의 연구에 미쳤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한국전자통신연구원#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리켄#김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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