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출산→소치 2위 “금 따고 다시 엄마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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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꿈을 묻다]<13> 여자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최강 마리 마르티노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휘닉스 평창 스키 하프파이프 월드컵에서 하늘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프랑스의 마리 마르티노. 이 대회에서 압도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마르티노는 남자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높은 점프와 안정적인 연속 900점프(2바퀴 반)를 자랑하며 평창 올림픽 포디엄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IOC 홈페이지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휘닉스 평창 스키 하프파이프 월드컵에서 하늘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프랑스의 마리 마르티노. 이 대회에서 압도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마르티노는 남자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높은 점프와 안정적인 연속 900점프(2바퀴 반)를 자랑하며 평창 올림픽 포디엄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IOC 홈페이지
지난해 12월 미국 콜로라도 코퍼마운틴 여자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월드컵 시상식. 1위에 오른 마리 마르티노(34·프랑스)는 포디엄(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한참이나 자신의 오른쪽에 선 장커신(16·중국)을 바라봤다. 생애 첫 월드컵 포디엄에 올라 한껏 얼어 있었던 장커신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장난을 거는 마르티노를 보자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시상식 후 만난 마르티노는 “(장커신과) 무려 18세 차가 난다. 정말 재밌는 일”이라며 크게 웃었다.

마르티노는 월드컵 투어를 다니는 여자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선수 중 ‘최고령’이 된 지 오래다. 스스로도 “결혼을 조금 더 일찍 했다면 딸뻘인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한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하지만 딸뻘의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마르티노는 차원이 다른 높이의 점프를 자랑한다. 마르티노는 남자 선수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자신의 점프 높이에 대해 “케빈 롤랑, 브누아 발랑탱(프랑스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남자 국가대표)과 함께 훈련을 하는데 둘은 늘 ‘더 높이 뛰어야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함께 훈련하는 게 많이 도움이 된다”며 “아직 다듬을 게 많다. 마지막 점프를 1080도(3회전)까지 늘리고 싶다”고 했다.

마르티노는 1년 전에도 이곳에서의 우승을 시작으로 3연속 월드컵 우승을 거둬 2016∼2017시즌을 세계랭킹 1위로 마무리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국제스키연맹(FIS)에서 시즌 랭킹 1위에게 주는 크리스털글로브를 ‘13년 전’에도 받았다는 것이다. 마르티노는 월드컵 데뷔 시즌이었던 2003∼2004시즌 출전한 세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데뷔와 동시에 세계랭킹 1위를 찍었다.

스키 강사인 엄마, 스노캣(눈을 평평하게 다지는 기계) 드라이버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마르티노는 스스로 “스키 DNA를 타고났다”고 말한다. 8세였던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서 본 프리스타일 스키어들은 스키를 좋아했던 소녀를 완벽히 매료시켰다. 이후 마르티노는 9세 때부터 동네 하프파이프 스키 클럽에 등록해 여자 하프파이프 스키의 선구자가 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코퍼마운틴 월드컵에서 대회 2연패에 성공한 마리 마르티노. 그녀는 대회 한 달 전 트레이닝 중 사망한 프랑스 알파인스키 선수 다비드 푸아송을 추모하기 위해 ‘SKI FOR DAVID’라는 문구를 손바닥에 적고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코퍼마운틴=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지난해 12월 미국 코퍼마운틴 월드컵에서 대회 2연패에 성공한 마리 마르티노. 그녀는 대회 한 달 전 트레이닝 중 사망한 프랑스 알파인스키 선수 다비드 푸아송을 추모하기 위해 ‘SKI FOR DAVID’라는 문구를 손바닥에 적고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코퍼마운틴=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마르티노가 한창 하프파이프를 타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자 하프파이프 스키어는 극소수였다. 당연히 제대로 된 여자 대회도 없었다. 마르티노는 주로 남자 대회의 전주자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 점차 X게임, US오픈에 여자 하프파이프 스키가 더해지면서 마르티노는 포디엄을 휩쓸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회에 나선 지 3년 만인 2006년 결혼을 결심하면서 마르티노는 비교적 이른 나이(22세)에 선수생활을 접었다. 2009년에는 딸 멜리로즈도 얻었다. 고향인 라플라뉴에서 바를 운영하며 평범한 ‘엄마’로 지내던 그녀의 삶이 다시 바뀐 건 2011년이었다. 하프파이프 스키가 소치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마르티노의 동료들은 앞다퉈 그에게 복귀를 권했다.

결국 마르티노는 2012년 은퇴 후 6년 만에 스키 선수로 복귀했고 2014 소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프랑스 국기를 들고 응원을 온 딸 멜리로즈는 엄마를 따라 올림픽 포디엄에도 올랐다. 당시 마르티노는 “딸에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성취했을 때 기분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딸이 이제 왜 자기가 만화를 볼 때 엄마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지 알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해 12월 무릎 인대 부상을 입은 마르티노는 2015∼2016시즌까지 복귀 후 한 차례도 월드컵 우승을 더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 코퍼마운틴 월드컵에서 2004년 이후 12년 만에 우승을 거두고 평창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자신이 건재함을 알렸다. 지난해 평창 테스트이벤트 금메달 역시 그의 차지였다.

평창 올림픽을 끝으로 마르티노는 다시 스키 선수에서 평범한 엄마로 돌아간다. 선수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할 무대인 만큼 후회를 남기지 않고자 한다. 더욱이 그녀는 함께 꿈을 꿨지만 평창까지 함께 오지 못한 두 동료의 몫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수년간 동고동락한 스키 하프파이프 동료 발랑탱이 올림픽을 100여 일 앞두고 무릎 인대를 다쳐 시즌을 접었고 알파인 스키어 다비드 푸아송은 11월 트레이닝 도중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금빛 무대를 꿈꾸는 그녀는 말한다.

“난 행복한 아내이자, 행복한 엄마이자, 평창을 향해 걷고 있는 행복한 스키어다.”

코퍼마운틴=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마리 마르티노는…

▽생년월일:
1984년 7월 20일(프랑스 라플라뉴)
▽키, 몸무게: 158cm, 48kg
▽성적:
FIS 월드컵 세계랭킹 1위(2003∼2004, 2016∼2017시즌), 2014 소치 올림픽 은메달, X게임 금 2, 동 2개
▽은퇴와 복귀:
2006년 결혼해 은퇴, 2009년 딸 출산, 2012년 6년 공백 깨고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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