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접근중, 훈련상황 아님”… 하와이 ‘혼비백산 38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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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띄운 비상경보에 주민들 패닉

13일(현지 시간) 오전 8시 7분 미국 하와이 주민과 관광객들의 휴대전화에 ‘하와이로 탄도미사일 접근 중. 즉시 대피할 것. 훈련 상황 아님’이란 비상경보 문자메시지가 떴다. 같은 시각 TV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실제 상황임을 알리는 경보가 전해졌다. 비상경보 문자를 발신한 하와이 주정부 비상관리국(HEMA)이 오전 8시 45분 잘못된 경보였음을 알리기까지 38분간 사람들은 북한 탄도미사일 공포에 떨어야 했다. CNN은 주민과 관광객들이 피신처를 찾아 긴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전하며 ‘천국에서 패닉(panic·공황 상태)으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된 중에 발령된 탄도미사일 위협 허위 경보는 하와이 전역에 일대 혼란을 야기했다. 단잠에서 막 깨어난 토요일 아침에 갑작스럽게 맞이한 상황이라 주민과 관광객들은 커다란 불안에 휩싸였다.

북한에서 7200km 떨어진 하와이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정거리에 드는 지역이다. 최악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핵 단추 설전’이 실전으로 비화된다면 하와이가 첫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북한 ICBM이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하와이에선 지난해 12월 1일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핵 공격 대피훈련이 실시됐다.

현지 언론은 “평소 해일 경보와 긴급재해 대처 훈련을 받아온 주민들이 비교적 신속하게 피신처를 찾았지만 평화로운 휴일 아침에 느닷없이 울린 경보로 인한 공포와 혼란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호텔 투숙객들과 빌딩 인근에 있던 사람들은 지하실로, 학교시설에 있던 사람들은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인근 터널로 대피해 고속도로에는 한동안 주인 없는 차량들이 방치됐다.

경보가 발령되고 13분 뒤 하와이 주정부 HEMA가 트위터를 통해 “하와이에 대한 미사일 위협은 없다”고 알렸지만 트위터 알림 외에 다른 후속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피소로 몸을 숨긴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타임라인을 확인하며 불안을 달랬다. 대피소에서 울음을 터뜨린 이도 있었다. 맷 로프레스티 하와이주 하원의원(민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과 욕조에 들어가 앉아 함께 기도했다”고 했다.

HEMA는 경보 발령 38분 만인 오전 8시 45분 휴대전화와 방송을 통해 경보가 잘못 발령됐음을 공식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핵 위협으로 인한 북한과의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렇게 중요한 경보가 잘못 발령되고 더디게 수정된 상황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골프를 치던 중 허위경보 발령 사태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데이비드 이게이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HEMA 직원이 일상적인 작업 교대를 진행하던 도중 실수로 경보 버튼을 잘못 눌렀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겠다”고 해명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연방수사국(FBI)도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하와이 전역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이곳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소니오픈에 참가한 선수들도 황급히 대피했다. 존 피터슨은 트위터에 “지금 매트리스 아래에 아내, 아기와 함께 숨어 있다. 제발 이 폭탄 위협이 진짜가 아니라고 알려 달라”는 글을 올렸다. 허위경보 사태는 그의 경기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12일 2라운드까지 선두와 3타 차로 공동 2위를 달리던 그는 14일 재개된 3라운드에서 퍼트 실수와 트리플 보기를 범하며 40위로 내려앉았다.

오아후섬 주민인 애덤 커츠 씨는 WP 인터뷰에서 “경보가 전해지고 4분 뒤 잠에서 깨어나 아내와 애완동물을 껴안고 화장실로 숨어 들어갔다. 미사일이 당도할 때까지 15분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당황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마우이 해변에서 가족과 휴가를 즐기던 조슬린 아즈벨 씨도 “경보를 받고 잠에서 깼다. 지하실로 피신하면서 ‘내가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보를 정확히 전달받지 못한 주민도 있었다. 호놀룰루 주민 존 타카라 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달걀 프라이를 만들면서 지역방송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어떤 경보 소식도 접할 수 없었다. 사이렌도 듣지 못했다. 이웃 주민이 전화로 ‘미사일 경보’라고 알려줘서 허겁지겁 대피했다”고 말했다. 시카고트리뷴은 “특히 관광 중심지인 와이키키에선 경보 사이렌 소리가 사람들에게 뚜렷이 전달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 정부의 비상사태 대처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백악관은 북한 등의 미사일 공격이 미국 본토를 겨냥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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