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증기 바로 얼어 ‘얼음 포차’… 손님 끊긴 노량진은 ‘빙판 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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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덮친 한파]서울 영하 15도 ‘추위와의 전쟁’

한반도를 덮친 한파와 폭설에 대한민국이 움츠러들었다. 12일 0시경 서울 광진구의 한 포장마차 비닐막 안에 붙은 ‘수증기 얼음’을
 주인이 털어내고 있다(왼쪽 사진).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는 ‘수도가 얼었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영업을 포기했다. 이민준 2minjun@donga.com·송영찬 기자
한반도를 덮친 한파와 폭설에 대한민국이 움츠러들었다. 12일 0시경 서울 광진구의 한 포장마차 비닐막 안에 붙은 ‘수증기 얼음’을 주인이 털어내고 있다(왼쪽 사진).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는 ‘수도가 얼었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영업을 포기했다. 이민준 2minjun@donga.com·송영찬 기자
12일 오전 1시경 서울 광진구의 한 포장마차는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뜨거운 국물에서 나는 김이 비닐막 안쪽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천장에는 ‘수증기 고드름’이 여럿 생겼다. 구겨진 비닐막은 빳빳하게 얼어 펴지지도 않았다. 주인은 연신 얼음을 털어내면서도 신기해했다. 안모 씨는 “20년 동안 포장마차 했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때 서울의 기온은 영하 13.7도. 여기에 초속 3m의 바람이 더해져 체감온도는 영하 20.0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한파가 닥친 11, 12일 중 가장 추웠던 순간이다.

○ 곳곳에서 한파와의 전쟁

한반도를 덮친 한파는 시간이 갈수록 수은주를 끌어내렸다. 12일 0시 영하 13.6도 후 계속 내려가 오전 7시를 넘어서자 영하 15.3도를 기록했다. 이날 최저기온이었다.

이날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에서는 손님 구경이 쉽지 않았다. 간이난로에 바짝 붙어 앉아 몸을 녹이는 상인들만 보였다. 수조에서 흘러나온 물이 꽁꽁 얼어 바닥은 빙판으로 변했다. 상인 김모 씨(62·여)는 “너무 추우니까 12시간 넘게 손님이 없었다. 10년간 이곳에서 장사하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보다 추위에 약한 다세대주택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취업준비생 정모 씨(24·여·서울 성북구)는 일어나자마자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야외 보일러실로 향했다. 꽁꽁 얼어붙은 보일러 온수관을 녹이기 위해서다. 패딩점퍼와 털장갑으로 중무장한 정 씨는 2시간 동안 온수관을 붙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었다. 정 씨는 “미리 보온재로 잘 감쌌는데도 얼어붙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하루라도 일을 쉬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칼바람을 헤치고 거리로 나섰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나모 씨(74)는 12일 새벽 서울 강북구 지하 단칸방을 나섰다. 그는 리어카를 끌고 지하철 4호선 수유역 근처로 향했다. 고철 신문지 플라스틱 등을 주워 리어카에 눌러 담으면 많게는 하루 1만 원가량 손에 쥔다. 나 씨는 “가끔 가게 주인들이 건네는 커피 한 잔이 참 고맙다”며 웃었다.

한파가 닥치면 순찰 업무를 맡은 경찰도 바빠진다. 범죄는 줄지만 노숙인이나 주취자가 동사할 가능성이 크다. 11일 오후 11시경 서울 영등포경찰서 영등포역파출소 김종윤 경장(36)도 동료 2명과 함께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약 1시간 동안 영등포역과 주변 쪽방촌 일대를 순찰했다. 마스크와 모자에 맺힌 입김이 금세 얼어붙었다.

평소 빈자리가 꽤 보였던 노숙인 쉼터는 만원이었다. 술을 마실 수 없어 이용을 꺼리던 노숙인들도 일찌감치 쉼터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쪽방촌에 사는 노인 중 일부는 엄두가 나지 않는 듯 12일 오전 무료 배식에 나오지 못했다. 그 대신 좁은 방 안에서 소주를 마시며 술기운으로 버티는 이들도 보였다.

○ 크고 작은 피해 속출

12일 오전 강원 횡성군 안흥면의 기온은 영하 24.8도까지 떨어졌다. 영하 18도를 기록한 춘천에서는 수도계량기 동파 신고가 잇따랐다. 영월군 무릉리와 정선군 고양리 등에서는 우물까지 얼어붙어 소방차가 긴급 급수에 나섰다.

폭설에 한파까지 겹친 호남에서도 피해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6시경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 앞 도로에서는 치매 환자인 최모 씨(92)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11일 최 씨가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우스 시설과 축사, 퇴비 공장, 인삼 재배용 그늘막 등이 무너지는 사고도 잇따랐다.

계속된 눈과 강풍으로 막혔던 제주 하늘과 바닷길은 12일 모두 뚫렸다. 활주로 운영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이날부터 이착륙이 정상화됐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아시아나 OZ8901편이 이날 오전 6시 59분 제주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오전 8시 19분 승객 168명을 태운 티웨이항공 TW722편이 제주에서 김포로 출발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 측은 12일 하루 7000여 명의 체류객을 수송했다고 밝혔다.

조동주 djc@donga.com / 고창=이형주 / 제주=임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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