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선희]당선소감의 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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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문화부 기자
박선희 문화부 기자
이맘때면 어김없이 ‘신춘문예 당선집’들이 눈에 띈다. 정초 각 일간지에 발표했던 당선작들이 슬슬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는 시기다. 어떤 작품들이 영예를 안았는지, 문학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고민과 질문은 무엇인지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당선작 자체도 좋지만 당선소감을 즐겨 읽는 편이다. 작품과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등단 소식을 들은 건, 서점 화장실에서였다. 그만 맨바닥에 널브러졌다. 오래 달린 사람처럼, 다리가 무거웠다”(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자 변선우)는 시인.

“사방에 달린 물음표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정말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감도 갖게 된다. 겁과 기대 사이에서 꾸준히 쓰겠다”(동아일보 소설 부문 당선자 강석희)는 소설가.

이런 소감문이 감동적인 건 단지 당선자가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대단한 행운을 거머쥐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작가가 된다는 건, 로또 당첨처럼 벼락같은 행운을 일시불로 수령하며 끝나는 게 아니다. 등단은 이제 겨우 출발일 뿐이다. 당선소감이 정말 빛이 나는 이유는 불확실성과 회의감, 낙담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골방에서 치열하게 습작했던 그들의 숨은 이야기가 마침내 드러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공연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지난해 말 런던 출장 중 크라이테리언 극장에서 ‘은행 강도에 관한 코미디’란 연극을 봤다. 언어유희가 정신없이 펼쳐지는 희극이었고 배우들은 일인다역을 물 흐르듯 소화했다. 커튼콜 시간, 공연이 끝난 뒤 내려졌던 막이 다시 올랐다. 무대의 조명이 다시 환하게 켜지며, 관객의 박수갈채가 터졌다.

무대위 누군가의 삶 대신, 직업이 배우일 뿐인 ‘런던의 누군가’로 돌아온 그들은 안도감과 성취감에 벅찬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든 공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그런 표정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만 지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뿌듯한 미소는 그들만의 당선소감인 셈이다.

물론 우리는 작가도, 배우도 아니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이런 소회를 밝힐 일은 드물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나름의 꿈이 있다. 9급 공무원이나 중등교사, 항공사 승무원이 꿈인 사람도 있고 자기만의 작은 가게나 스타트업 기업을 시작하는 게 꿈인 사람도 있다. 분명한 건, 분야가 뭐든 간에 골방에서 저마다의 무대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는 것이다.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다들 각오를 다졌겠지만 쉽지는 않다. 이렇게 애를 쓰는 게 투입 대비 효과가 있는 일인지 따지며 슬슬 타협한다.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서 목표”라며 내심 포기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럴 때 신춘문예 당선소감을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이들의 뜨거운 기록은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묻는다. 한 해가 끝난 뒤 올라가야 할 커튼콜 무대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관객의 환호보다 중요한 건, 거기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일 것이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신춘문예 당선집#동아일보 소설 부문 당선자 강석희#신춘문예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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